기사 (2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개- 고야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개- 고야 [김기옥 사유담 이사] 고야가 그림 한 점을 '옛따~가져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개'를 달라고 할 것 같다.취향도 비극적이게 왜 블랙 페인팅을 고르냐고 한다면 나는 이 그림에서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개는 허망한 고야 자신의 말년을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모래 바람인 지 아니면 바다의 익사 직전의 개인 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개의 눈에서 희망을 보기로 했다. 허우적되지 말고 가장 아래까지 잠겼다가 그 날이 인생의 첫 날, 첫 발인 양 걷기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보기로 했다.아직 충직하게 귀를 제끼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10-08 12:09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나의 마리아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나의 마리아 [김기옥 사유담 이사] 알바 공작부인은 고야와 사랑했을까?뼛 속부터 절대 귀족이었던 부인은 일찍 아버지를 잃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녀는 비교적 자유롭고 지적이며 신분의 제한없이 사람을 만났다. 새로움에 즐거워하며 아름다운 것에 감동하고 용기있는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이었다.공작 집안의 고명 딸로 스스로가 공작이었으나 여인이라서 사촌동생과 결혼했다. 그러나 34살에 남편은 떠났다.아름다운 검은 머리의 머리카락마저도 매력적이었다는 그녀는 고야를 여름별장에서 만나고 그 여름을 함께 했다. 18살 연상의 고야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10-01 13:43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옷을 벗은 마하 VS 옷을 입은 마하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옷을 벗은 마하 VS 옷을 입은 마하 [김기옥 사유담 이사] 이렇게 제목을 잡다니…. 이미 진부하다. 옛날에 옛날에 그림을 1도 모를 적에 프라도는 유명하다고 하고, 아는 건 없고, 지금처럼 핸드폰이 알려주는 것도 없을 시절이었다.암것도 모르는 그 무식한 나도 옷을 벗은 마하는 알아서 들어가자마자 마하를 찾았다. 그러나 참 안타깝게도 벗은 마하는 일본에 가있었다. 하필 내가 간 그 시절에 일본에 갔단다.그 그림 하나밖에 모르는데 이런 열여덟…그렇게 첫인상이 좋지않은 그림이었다. 사실 나는 고야의 그림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여인들은 나의 미학과 다르다고나 할까?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9-24 13:41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위대한 계보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위대한 계보 [김기옥 사유담 이사] 당대 스페인에서 고야는 인정받지 못했을 지 모르지만 고야의 반성문은 위대한 시작이 되었다.그림은 꽃이었다. 그것도 열매 없는 열흘 붉은 꽃이었다.그 붉은 꽃이 흐르는 피를 대변하게 했다. 고야의 선물이었다.고야를 존경한 많은 그림쟁이들은시대의 폭력을 그림으로 고발했다. 꽃은 제 입을 달고 말을 하기시작했다.첫 그림은 신천리에서 미군 학살로 죽어간 무고한 사람들이었다. 1980년까지도 미군 학살이라는 이유로 금지된 그림이었으나 이제는 피카소 덕에 황석영 덕에 말할 수 있게 되었다.다음 작품은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9-17 14:37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인생을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Ⅱ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인생을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Ⅱ [김기옥 사유담 이사] 왕가의 가족사진에 화가 따위가 들어갈 수 있느냐구요?설득했죠. 우연하게도 13명의 왕가 사람들이 서있지요? 13은 불길한 숫자이니 제가 끼어들어 14가 되면 안정적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렇게 역대 최고의 가족사진이 만들어졌습니다.내 사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바보같은 왕, 합죽이 같은 왕비, 하늘색 옷의 철 모르는 고도이, 왕점을 달고있는 왕의 누이까지 괴물같지만 그들은 화려한 옷에 눈이 멀어 극찬을 했습니다. 바보들입니다. 나는 짤릴 줄 알았습니다.나중에 어느 미술사가가 말하길 떼돈을 벌어들인 빵장수 일가족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9-10 12:08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인생을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Ⅰ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인생을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Ⅰ [김기옥 사유담 이사] 나는 욕심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능력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태어나보니 누더기를 입은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먹고사는건 힘든 것일까요?아버지는 도금쟁이였고 언제나 일을 했지만 먹고사는것 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손재주가 좋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그릴 수가 있냐면서 사람들은 제 그림재주를 놀라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림도 밥벌어먹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궁전에 들어가 문화 | 이지수 기자 | 2019-09-03 14:21 [에뜨랑제의 SNS미술관] 고야의 격변 [에뜨랑제의 SNS미술관] 고야의 격변 [김기옥 사유담 이사]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생애를 보면 '바르다가 공부 잘했고 관직하다가 글도 잘 써 책을 남긴 위인'이 대부분이다. 조금 다른 경우는 '좀 이기적이었는데 어느 계기로 남을 위해 살게되었다' 였다. 이 정도였지, 도둑이었다가 성자가 되어가는 이야기는 레미제라블에서나 가능한거지 별로 없다.40 넘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50 넘어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운이 없어 사그러들 뿐이다.그러나 고야는 인생 전후반이 빛과 어둠이다. 그렇게 극적인 변화는 나는 못봤다. 손이 굳어 그림이 단순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8-27 12:08 [에뜨랑제의 SNS미술관] 허수아비- 고야 [에뜨랑제의 SNS미술관] 허수아비- 고야 [김기옥 사유담 이사] 장식성이 강한 로코코는 무조건 곱고 예뻐야 했다. 아기자기하고 발그레레한 여인들이 주인공일 때가 많았다. 어둠의 고야가 저렇게 도자기 그림같은 맑은 날을 그렸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고야에게 초상화 그리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얼마나 인기가 있으면 왕의 차례 조차도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했다. 말도 안되지만 사실이 그랬다. 카롤루스 4세는 감질났는지 수석 궁정화가로 삼아버렸다.데뷔 초기 흑역사라고 할만큼 고야스럽지 않지만 사실 긴 시간 맑은 그림을 그렸던 고아였다. 그렇게 프라도의 대표작이 되어 고야 특별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8-20 14:24 [에뜨랑제의 SNS미술관] 자화상- 고야 [에뜨랑제의 SNS미술관] 자화상- 고야 [김기옥 사유담 이사] 3월 30일이 생일인 고야였다.스페인에서 태어나 그림 꽤나 그린다고 소문은 났지만 궁중화가는 되지못했다. 세 번이나 아카데미에 낙방한 고야는 이탈리아에 넘어간다. 검정색을 유난히 좋아했던 화가는 이탈리아에서 빛을 얻는다. 그렇게 빛을 그림에 넣던 시절이 어쩌면 고야에게 가장 신나는 시절이었다.입소문 따라 스페인에서도 종종 연락이 왔다. 야심이 많았던 고야였을까? 궁정화가 프란체스코 베이유와 유독 친하게 지내더니 베이유의 여동생과 결혼한다. 왕립미술학회 회원이었던 베이유의 덕택으로로 크고 작은 일을 맡더니만 드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8-13 10:58 [에뜨랑제의 SNS미술관] 세바스찬 데 모라 [에뜨랑제의 SNS미술관] 세바스찬 데 모라 [김기옥 사유담 이사] 벨라스케스의 연작 중에서 무려 9점이나 되는 난쟁이 그림 중 하나이다. 겨우 130여 작품을 남긴 화가의 그림 중 많은 수가 난쟁이 그림이었다. 왕족들의 장난감이었고 맡은 역할은 광대였다. 선천적 장애는 신의 저주라고 믿었던 유럽에서 장애인들이 살아내기는 혹독했다. 멀쩡한 지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눈에 정확하게 들어나는 왜소증 환자들은 이렇게 살기위해 궁전에 들어왔다. 그들은 살아있는 인형이었고 온갖 재간을 부려야 했다.하지만 때로는 왕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상담자이자 조언자가 되기도 하였다. 마치 조선의 왕과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8-06 14:01 [에뜨랑제의 SNS미술관] 이노켄티우스 10세 [에뜨랑제의 SNS미술관] 이노켄티우스 10세 [김기옥 사유담 이사] 벨라스케스의 주인공들의 눈빛을 기억하는가? 아련한 듯 진실하고 여리지만 기품있는 눈빛들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땅 로마교황청의 이노센티우스 10세의 눈빛은 표독스럽기 그지없다. 자애롭고 덕이 높은 교황의 눈빛으로는 꽝을 넘어 헐이다.1650년 교황은 76세였다. 4년 뒤에 돌아가신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하다. 빛이 돌아 혈색은 기막히고 풍채는 당당하다. 벨라스케스가 2차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 그린 교황의 초상이었다. 교황은 완성된 그림을 보고 자기랑 똑같이 생겼다고 불쾌해했다고 한다. 지금이랑 똑같다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7-30 10:30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불카누스의 대장간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불카누스의 대장간 [김기옥 사유담 이사] 불카누스는 로마식, 헤파이토스는 그리스식 입니다. 요즘은 그리스식이 오리지널 느낌이 난다고 인기있으니 헤파이토스로 기억해두는 게 좋습니다.스페인은 이탈리아보다 더 강한 카톨릭 국가였습니다. 로마에는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그림 표현이 자유로운 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스페인에서 12신을 그린다는 건 종교재판에 오를 일이었습니다.그러나 벨라스케스니까 가능했을 겁니다. 이탈리아에 두 차례나 갔으니 분명 보티첼리의 그림을 보았을 겁니다. 아프로디테의 눈부신 자태가 살아있는 프리마베라를 보았겠지요?그렇게 붓을 들고 이탈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7-23 12:47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합스부르크 립(Habsburg-Unterlippe)- 벨라스케스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합스부르크 립(Habsburg-Unterlippe)- 벨라스케스 [김기옥 사유담 이사] 원판이 안되면 뽀샵도 한계가 있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펠리페 4세의 초상화 였다. 오로지 벨라스케스에게 그리게만 했다는 초상화였다. 벨라스케스가 그려서 저 정도면 왕은 못생긴 거다.고질병인 주걱턱이 빠지면서 얼굴이 말처럼 길어졌다. 근친혼에서 온 심각한 기형이었다. 턱이 튀어나와 입이 다물어지지않았고 침이 질질 흘러 손수건을 달고 있을 정도였다. 음식을 씹으면 질질 샜고 소화가 잘 안됐다. 그럴 때면 가슴을 주먹으로 쳐서 신하들은 같이 밥먹는걸 싫어했다고 한다. 잠이 들면 입을 다물 수 없어 벌레가 들어가기도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7-16 15:00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마르가리타 공주- 벨라스케스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마르가리타 공주- 벨라스케스 [김기옥 사유담 이사] 벨라스케스의 뮤즈였다. 펠리페4세는 13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열살을 넘긴것은 겨우 세명이었다. 어렵게 얻은 마르가리타 공주는 눈처럼 하얀얼굴에 파란 눈동자와 금발을 가진 금세기 최고의 미모로 태어났다.존재만으로도 고귀한 아기씨는 아버지 펠리페4세의 기쁨이었다. 손이 귀하기로 유명한 합스브르크가문은 귀한핏줄을 이어가다가 망했다고 볼 수있다. 고결한 혈통을 보호한다고 가족끼리결혼해서 유전병으로 죽어가게 된 것이다(신라의 성골이 사라진것도 근친혼 때문이었다).펠리페 4세는 자신의 며느리 내정자였던 마리아나와 결혼했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7-09 14:23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세비아의 물장수- 벨라스케스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세비아의 물장수- 벨라스케스 [김기옥 사유담 이사] 벨라스케스의 젊은시절 제 고향에서 그려낸 보데곤 양식이라 부르는 정물화풍 그림이다.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포커스가 다르다. 제 상태에 따라서 보인다고 하는데 나는 저 투명하고 지문 하나없이 맑게 닦여진 컵을 봤다. 내가 그릇 모으는 취미가 있다. 밥도 한끼 1찬으로 차리는 종족보존 정도만 요리하는 사람이 그릇은 200인분 쯤은 가지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고 나는 그렇게 해외에서 그릇을 사모았다. 그래서 그러나 나는 유리잔이 한 눈에 들어왔다.제목으로 보면 세비아에서 물을 파는 남자를 그린 것인데 사연은 뒷전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7-02 14:13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계란부치는 노파- 벨라스케스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계란부치는 노파- 벨라스케스 [김기옥 사유담 이사] 덜덜덜 계란이 요동치는 그림이다. 분명 멈춰있는 그림인데 고개를 돌릴 때마다 계란이 덜덜덜 익는 게 보인다.벨라스케스만이 가능한 기법이었다. 베짜기를 하는 작품에서는 물레가 팡팡 돌아가는게 보이는 것 같다.거대한 캠버스에 주로 작업을 하던 화가는 긴 붓으로 그렸다. 그래서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3미터 뒤에서 봐야한다. 나가다가 돌아서면 가능한 일이다. 프라도미술관은 그 사실을 알았는지 거대한 공간을 벨라스케스에게 내어주었다.오늘의 그림은 프라도미술관에 전시된 것에 비하면 가로세로 1미터의 작은 그림이다. 스코틀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6-25 13:46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비너스의 단장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비너스의 단장 [김기옥 사유담 이사] 아름답다.평가하기 전에 이미 공간을 먹어버리는 작품이 있다.벨라스케스의 역작 '비너스의 단장'이 그렇다. 해석에 따라서 '거울보는 비너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목이 뭐라해도 상관없이 아름답다. 1644년 당대 미인은 지금의 미인과 겨뤄도 밀리지 않는다. 동시대 네덜란드의 루벤스의 작품 속 미인은 샐룰라이트가 작열하는 코끼리 같은 뒷태를 보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특이한 일이다.모름지기 어느 정도 넉넉한 살들이 덥고 있는 후덕하고 뽀얀, 그러나 손만큼은 작고 아담한 여인이 당대의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6-18 13:28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시녀들-벨라스케스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시녀들-벨라스케스 [김기옥 사유담 이사] 아무리 그림을 몰라도 이 작품은 아는 사람이 많다. 미스테리 미제 사건처럼 '시녀들'에 대한 의문은 지금도 진행중이다.의혹이 많아서 증거가 늘어날 수록 그림은 더욱 미궁으로 빠진다. 내로라하는 철학자들은 대부분 시녀들을 다뤘다. 수많은 논문은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해석은 난무했고 다양했다. 만약 벨라스케스가 살아와서 그림의 해석들을 본다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설마… 과연 "이라고 할 만큼 이제 주장들은 열거하기도 쉽지않을 만큼 많아졌다.스페인에 미술관의 기초를 열어둔 열렬한 미학자는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6-11 13:53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산 안토니오의 환상'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산 안토니오의 환상' [김기옥 사유담 이사] 그림이 그렇다.가만히 보아야 좋고, 오래 보아야 좋고, 다시 보아야 좋다.최첨단 멀티미디어에 둘러쌓여 기계를 뒤집어쓰면 실제같은 가상현실에도 들어설 수 있고 TV는 사람눈보다 정교해진 지 오래다.그 많은 적들을 사방에 배치하고 그림을 보려면 일정의 레드썬(자기최면)이 필요하다.나는 일체의 멀티미디어와 TV와 단절된 삶을 살던 '나혼자 알아서 좋아 족'이었다.그래서 그랬는가 몰라도 그림이 좋아 여행을 다녔다. 그림 한 점 보러 노르웨이에 갔던 사건은 유명하다. 갔더니 스웨덴에 있다고 해서 덕분에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6-04 13:51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엘카프리쵸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엘카프리쵸 [김기옥 사유담 이사] '변덕쟁이'라는 이름의 가우디 두번째 작품입니다. 처음 만들어진 까사 비센스와 비슷한 듯 다르다고 합니다.가우디는 컨셉이 겹치지 않습니다. 자연이 다채로우니 자신의 건축도 전혀 닮지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가우디 다운 발상입니다. 자신의 기법을 넘는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자신의 기법을 찾는 것도 어려운데 매번 방식을 바꾸다니요…그런데 왜 엘카프리쵸는 카사 비센스와 비슷할까요? 이유는 31살 가우디는 멀리 지중해 바다가 코메야스에 갈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설계도면을 그려서 보냅니다. 그의 성격 문화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2019-05-28 14:05 처음처음12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