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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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전파의 미학(1)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5.10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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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는 1850년에 첫 번째의 ‘샬럿의 아가씨’를 그리기 시작하여 세 번을 그렸는데, 앞의 그림은 1905년에 그린 세 번째 작품이다.
그는 시적인 그림, 그림 같은 시를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는 것을 그는‘진리’로 보았다.
즉, 그림으로 시를 완전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그림에서는 마법의 거울과 아가씨의 허리를 가는 끈으로 묶어 드레스 장식을 강조하였다.
그는 테니슨의 시에서 나타난 특징을 여덟 개의 둥근원반으로 이어진 볼록거울과 마법을 통해 나타난 란슬럿 기사의 모습을 절묘하게 대비시켜 놓았다.
이 장면은 샬럿의 아가씨가 갇힌 세계를 걸어나와 죽기 직전의 긴장관계를 암시해 준다. 테니슨이 1857년에 ‘샬럿의 아가씨’개정판을 내면서 그는 두 번 째의 샬럿의 아가씨를 그렸는데, 성적인 능동성을 암시하듯 팔을 노출시켰다. 그리고 1886-1905년에 세 번 째의 샬럿의 아가씨를 그렸다.

미술계에 혁명을 일으킨 헌터는 1844년 왕립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이 곳에서 밀레와 로제티를 만난다.
헌트는 자연을 사실적이고 완전하게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중세예술과 그 가치체계를 복원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고 진실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1854-1893년에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지방을 수 차례나 여행하였고 고용된 목자(1851), 속죄양(1854), 샬럿의 아가씨(1850-1905)등을 그렸다.
그는 그림으로 시를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시와 그림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샬럿의 아가씨를 세 번에 걸쳐 그리면서 시인 테니슨을 만나 시에서 표현된 감정을 토론하며 화폭에 그대로 살려내려 했었다.
학생 가운데 제일 어렸던 밀레는 11세에 왕립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로 재능을 발휘하여 ‘영광과 사랑이 그대에게 있으라’는 구절처럼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로제티의 시적 영감과 헌트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프레스코를 연상하는 기법을 선보이며 마리아나(1851), 오펠리아(1852) 등을 남겼다.
로제티는 이탈리아의 화가·작가 가문의 아들로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하였으며, 앞에 붙어 다니는 단테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이탈리아의 대문호 단테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틈이 나는 대로 ‘신곡’을 강의하였다.
그는 원래 미술아카데미에서 고미술학을 공부했을 뿐 체계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라파엘 전파 형제회’를 창립한 후에는 헌트로부터 유화기법을 지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라파엘 전파의 의견과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잡지 ‘맹아(Germ)’를 발간하고 로제티와 울너를 비롯한 회원들의 글을 실었다.
그는 후에 그의 모델로 활약하던 엘리자베스 리지 시달(Elizabeth Lizzie Siddal, 1829-1862)과 결혼하였다.
이들은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추구하였고 로제티는 대학에서 교수 활동을 하는 등의 이유로 제1차 라파엘 전파 모임은 1852년까지 밖에 활동하지 못했다.
그러나 1856년 로제티는 그림을 그리는 일로 되돌아와 에드워드 번존스(Edward Burn-Jones, 1833-1898), 스윈번(Swinbune),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를 끌어들여 제2차 라파엘 전파회를 이끌었다.
이 가운데 윌리엄 모리스는 옥스퍼드대학 안에 토마스 말로리의 아서왕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벽화를 그리는 등 중세 신화와 중세적인 로망스를 되살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에드워드 번존스를 만나 단테 로제티의 충실한 사도가 되었다.
단테 로제티는 백합아가씨(1868), 마라아나(1870), 신혼의 잠, 버드나무 숲 연가를 그렸고, 모리스는 기네비어 왕비(1858) 등을 그리면서 회화적 전통에서 비켜나 있던 문화적 영웅들을 다시 화폭으로 불러냈다.
이와 병행하여 엘리자베스 리지 시달, 애니 밀러(Annie Miller), 제인 모리스(Jane Morris), 조지아나 번존스(Georgiana Burne-Jones)등 라파엘 여성회도 조직되어 자연과 인간, 성을 주제로 그림활동을 하였다.


서규석 박사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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