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책임한 공기업, 그리고 성난 농심(農心)
[기자수첩] 무책임한 공기업, 그리고 성난 농심(農心)
  • 최병민 기자
  • 승인 2007.06.24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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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를 다시 해야 할지, 논을 몽땅 갈아엎어야 할지 도대체 판단이 서질 않네요.”
지난달 하순경 어렵사리 모내기를 마친 논의 모가 염해를 입어 빨갛게 말라죽은 모습을 지켜보던 태안군 안면읍 중장리 일대 중장지구 경작 농민들의 화난 목소리다.
이곳은 한국농촌공사 서산·태안지사 측이 지난 2002년도 174억여원을 투입해 유휴토지개발사업을 마친 대규모 경작지로 규모는 78ha(사업규모는 104ha)에 달한다.
농민들이 화난 이유는 최근 몇 년간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짓던 이곳이 금년 봄 농업용수로 활용해오던 저수지가 모두 말라 농업용 물이 부족하게 된 것.
예년 같으면 저수지가 마를 경우 경작지 옆의 소류지(담수호) 물을 저수지로 퍼 올려 저수지의 물과 섞어 농업용수로 쓰곤 했지만, 올 봄엔 저수지 물이 아예 말라버려 소류지 물을 농경지로 직접 퍼 올려 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농촌공사 측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황포항과 연결되는 배수갑문 2개 중 1개를 제거한 이후 만조 시마다 바닷물이 소류지로 유입되면서부터 물의 염도가 높아져 소류지 물을 농업용수로는 도저히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 정도인데도 일부 농민들은 다급한 마음에 바닷물이 섞인 소류지 물을 논에 대어 지난 달 10일부터 30일경까지 약 50ha의 논에 모내기를 끝마치는 한편 약 11ha에는 벼 직파를 했지만 이중 30~40%인 20여 ha가 염해를 입어 고사했고, 나머지 17ha는 아예 6월 하순인 현재까지 모내기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농민들은 지난해 가을, 담수호에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중장지구 논에서 1차 염해(鹽害)가 발생했었는데도 농촌공사 측이 농한기인 지난겨울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올 들어 2차 피해가 발생했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한국농촌공사는 2002년 유휴토지개발사업 당시 농민들의 요구를 묵살한 채 2개의 배수갑문 중 1개를 없애는 등 주먹구구식 사업추진으로 만조 시마다 바닷물이 소류지로 스며들게 한 잘못도 있지만, 문제가 발생한 이후 줄곧 예산타령만 할뿐 초래되는 문제점을 조속히 해결하려는 책임 있는 모습은 도무지 엿볼 수가 없어 농민들을 더욱 화나게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안군수와 관계 공무원들이 연일 패해 현장을 누비며 해법을 모색한 끝에 지방비 1억 3000만원을 우선 투입해 예비못자리 준비와 관정을 뚫어 농업용수로 활용케 한 조치는 성난 농심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유일한 처방으로 여겨진다.
공기업(公企業) 한국농촌공사의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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