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 일 칼 럼]‘최종병기’ 최루탄?
[충 일 칼 럼]‘최종병기’ 최루탄?
  •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
  • 승인 2011.11.2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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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정국으로 촛불과 함께 요란하게 시작한 18대 국회도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끄럽고 요란하다. 촛불이 또 등장할 기세이기도 하다.
18대 국회는 매년 연말이면 예산국회와 맞물려 전기톱과 해머, 주먹과 욕설, 날치기와 원천봉쇄가 교차하면서 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전 국민적 비난을 동시상영처럼 반복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압도적인 전과(戰果)를 올렸다. 이른바 ‘최종병기’ 최루탄이다.
지난 여름, 폭우라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할 만큼의 엄청난 비가 쏟아지던 날.
쓰나마나한 우산을 받쳐 들고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를 혼자서 보러갔었다. 온갖 언론들이 격찬을 쏟아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활’에 흥미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중소도시에서 여학교를 다니던 시절.
친구들은 무용과 방송을 번갈아 가며 하던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국궁’을 하던 친구들이 못 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다리를 살짝 벌리고 옆으로 서서 활줄을 볼에 대고 심호흡을 하며 과녁을 향해 정신을 집중하던 친구들.
늘 말이 없던 그녀들이 내게는 올라갈 수 없는 높은 나무였다. 국궁(國弓). 어쩌면 이름도 그렇게 위엄이 있는지. 그때의 그 아련한 내 사춘기 기억이 억수처럼 내리는 비속을 뚫고 나를 영화관으로 인도했으리라.
그러나 정작 영화는 나를 만족시키지 못 했다.
지나치게 시끄러운 효과음과 주인공들 행위의 정당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지 못 하는 인과관계의 부족, 게다가 뜬금없는 호랑이의 등장은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마지막 대사가 내 가슴을 쳤을 뿐이다. 그리곤 극장을 빠져 나오는 내 입에선 ‘최종병기는 활이 아니라 결국 호랑이네’ 하는 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지난 22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되던 날. 내 머릿속에는 다시 ‘최종병기 활’ 그 영화가 떠올랐다. 그날 오후 3시13분.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기억하기 위한 물망초 배지 행사관계로 부지런히 국내외일정을 조정하고 있을 때, 늘 진동으로 되어 있는 내 핸드폰이 진저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한나라당 국회 본회의장 진입’이라는 다급한 문자가 떴다. 올 게 왔구나. 평소 대의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는 헌법학자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본회의가 정상적으로 열리면 당당하게 들어가 토론하고 내 주장을 부대의견으로 달아줄 것을 요구하겠다”고 밝혀온 만큼 나는 서둘러 본회의장으로 갔다.
이미 의장석 앞에는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들 20여 명이 진을 치고 둘러서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몸싸움을 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의장석을 점거할 의도도 없어 보였다. 민노당 의원 몇 분이 고성을 지르며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는 했으나,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 몇 명이 스마트폰과 아이폰을 이용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 모든 장면이 내게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도저히 정신을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자리에 앉아 발언할 내용을 메모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앞을 보니 의장석 앞 발언대에 민노당 김선동의원이 서 있고 그 주변으로 노오란 연기가 자욱하게 번지고 있었다. 처음엔 연막탄인 줄 알았다. ‘사람들 시야를 가린 후에 의장석을 점거하려고 그러나?’하는 생각도 잠시. 곧이어 눈과 코가 매캐해 지기 시작했다. 최루탄이었던 것이다.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최루탄을 터트리다니!
‘최종병기 활’에서 호랑이가 등장할 때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이없고 화가 치밀었다. 유독 기관지가 약한 나는 발작적으로 기침을 했다. 눈물 콧물은 조연일 뿐, 계속되는 기침에 구토까지 올라왔다. ‘최종병기 활’은 50만명이 포로로 끌려가야 했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국회의 최종병기 최루탄은 294명을 포로로 하고 있었다.
그 최루탄 때문에 모든 의사일정이 대부분의 절차를 생략하고 넘어 갔다. 토론도 제안 설명도 모두 다 생략됐다.
세상에 5년이 다 되도록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한 한미 FTA에 대해서 제안 설명도 토론도 없이 그냥 넘어 가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나는 타들어 가는 목을 두 손으로 감싸며 자리에서 일어나 끊임없이 소리쳤다. “한미 FTA 토론합시다” “토론은 해야 해요” “토론이요~”
그러나 그 소리는 난장판 속에 묻혀 버렸다. “어디선가 토론, 토론, 하는 소리가 들렸다”라는 속기록 단 한 줄이 증거로만 남았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의회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민주당과 민노당은 그토록 주장하던 ‘국민’, ‘국익’을 어디다 다 팽개쳐 버리고 의장석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만 질러대고 있는가? 게다가 본회의장의 카메라는 다 꺼 놓고.
언론은 국민의 눈이요 귀요 입이다. 그런데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무엇이, 왜, 얼마나 두렵기에 국민의 눈과 귀, 입을 가리는가? 민주당과 민노당이 발언대를 점거하고 있으면 마이크를 들고서라도 토론은 했어야 했다.
의회(parliament)라는 말의 어원이 ‘끊임없이 말하는 곳’아니던가? 토론 없는 의회는 죽은 의회, 생명력 없는 의회다. 그 죽은 의회는 불과 8분 만에 끝이 났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제 정국은 국회의 최종병기 최루탄을 넘어 또 다시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이 혼란은 정치적으로 계산해서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리라.
‘국민’을 설득하고자 해서도 극복할 수 없으리라.
‘이완용’과 ‘을사늑약’이 난무하는 초겨울 들판에서 ‘두려움을 직시하는’ 그 누군가가 또다시 역적으로 몰려 몰살되는 악순환을 기어이 겪어야만 ‘최종병기’ 최루탄은 막을 내리리라!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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