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 일 칼 럼]남남북녀(南男北女)의 또순이들
[충 일 칼 럼]남남북녀(南男北女)의 또순이들
  •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
  • 승인 2011.12.05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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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동안 우리 농가의 연평균 소득은 1008만원이었다. 농촌의 한 가족이 한 달에 버는 소득이 겨우 84만원이라는 말이다. 최저임금인 120만원에도 한참 모자라는, 아니 2/3밖에 되지 않는 참 어이없는 액수다.
그만큼 농촌이 무너져 가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은 농가소득을 굳이 통계까지 들먹이며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나이 드신 분들만 남고 젊은이들은 다 떠나는 곳이 농촌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런 농촌에 요즘 새바람이 불고 있다. 1년에 몇 억씩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탈북자들이다.
남들은 도시로 도시로 앞 다투어 나가는데 유독 빈 농촌에 파고들어 알알이 자신들의 꿈을 일구어 가는 사람들. 이들 가운데는 이미 5~6년씩 농사를 지어 이제는 번듯한 농장을 운영하는 탈북자들도 있다. 성공한 사람은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2억원이라는 소득을 올리기도 했단다. 2억원. 그것도 고구마 한 가지만 농사를 지어 2억원이라는 돈을 벌었다면 일반 농민의 20배를 번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이들도 처음엔, 아니 지금도 엄청난 고생과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빈 손, 맨 몸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사선(死線)을 넘어 탈북해 몽골과 베트남, 라오스, 미안마, 태국 등을 거쳐 온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가진 것이라고는 이리 저리 긁히고 뜯긴, 병든 몸 뿐’이지만, ‘차가운 도시가 낯설어’, 또는 ‘아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부모 형제 두고 떠나 온 고향산천을 연상케 하는 나지막한 농촌이 정겨워’ 무작정 강원도나 충청도 산골로 정착해 들어갔단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집집마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나그네가 바라볼 때야 평화롭고 서정적이지만, 유난히 작은, 병든 몸 하나 누일 곳 없는 탈북자들에게는 그저 서럽디 서러운 타향일 뿐이었으리라. 그래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쓰러져 가는 빈 집을 이들에게 알선해 주고, 지자체로부터 도유지, 시유지 등을 소개받아 싼값에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이들로썬 가뭄에 단비같은 ‘비빌 언덕’이었다.
게다가 ‘또순이’ 기질이 유전자 깊이 박혀 있는 북녘의 억척스런 여성들인데!
이들은 정말 피가 나게 일했단다.
손톱이 문드러지도록 고구마를 심고, 캐고, 손톱이 시커멓게 변하고 허리가 굽도록 깻잎을 따고, 고개 넘어 이웃 마을 양계장에까지 리어커를 끌고 가서 계분을 얻어다가 호박을 키우고, 그리곤 돈이 좀 모이면 좀더 수익이 난다는 고사리도 키우고, 벌꿀도 키웠단다. 개중에는 과수농가에 들어가 품을 팔다가 빚더미에 잔뜩 올라앉은 과수원을 ‘에라 모르겠다’ 두 눈 딱 감고 인수해서 ‘죽을 똥’을 싸며 몸부림친 덕에 ‘확실히 맛이 다른 배’를 수확할 수 있었다는 일화들은 아무리 들어도 끝이 없는, 흥미진진한 ‘천일야화’였다.
이들을 국회로 초대하기로 했다.
‘농촌이 죽어간다’는데, 이들의 성공담을 들려주고 싶었다.
요즘 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국회를 욕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민의의 전당인데, 국민의 이름으로 이렇게들 고생해 키운 ‘내 새끼 같은’ 깻잎과 고구마, 배추, 갓, 벌꿀, 배를 자랑하게 해 주고 싶었다. 슴슴한 북한식 김치와 옛 맛을 간직한 북한식 된장 고추장 맛도 서울사람들에게 뽐내게 해 주고 싶었다.
나의 이런 작은 소망을 이회창 전(前) 자유선진당 대표께서 이루어주셨다.
가을걷이가 다 끝난 지난 주, 이들을 모두 국회로 불러 탈북자들이 농촌에 들어가 재배하고 키우고 손끝으로 만들어 낸 그 모든 것을 전시하며 자랑하고 맛 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사회는 이렇게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이 아닐까?
모처럼 정당을 초월해 많은 국회의원들이 행사장을 찾아왔다.
그리곤 두 손 가득 탈북 영농인들의 피와 땀이 서린 농산물들을 샀다.
그래봐야 만 원짜리 한 장이면 두 손에 묵직한 풍성함이 느껴질 정도이니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다 같이 즐거울 수 있는, 모처럼 정겨운 풍경들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펼쳐졌다.
앞으로도 탈북자들이 휑하니 비어 버리고 피폐해진 우리 농촌에 들어가 이렇게 좋은 결실들을 알알이 일궈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농촌에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것이고, 학교가 다시 생겨날 것이고, 동네마다 웃음꽃이 피지 않겠는가? 게다가 농촌의 노총각들이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아시아 어느 나라의 색시를 맞이하는 것보다 말이 통하고, 같은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탈북여성들과 결혼을 한다면 남남북녀(南男北女)!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그저 신나는 일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며 뇌리를 스친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더 많은 탈북자들이 희망을 품고 농촌으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 비준을 앞두고 우리 자유선진당이 줄기차게 주장했으나, 아직도 되지 않고 있는 농민들에 대한 법적, 제도적 지원이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주택이나 농지 매입대금에 대해서는 연 1%의 저리로 30년 동안 천천히 갚아 나갈 수 있도록 해 줘야 하고, 교육이나 보건 등 복리후생사업도 지자체의 자립도와 상관없이 지원될 수 있도록 ‘농업지원기본법’이 빨리 제정되어야 한다. 농가재해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은 이미 1980년대부터 이 모든 것을 ‘농업기본법’을 통해 지원하고 있는데, 모처럼 농촌을 찾아 들어간 탈북자들까지 농가에서 빠져 나오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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