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 일 칼 럼]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근다’고?
[충 일 칼 럼]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근다’고?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
  • 승인 2011.12.1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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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너무 혼란스럽다.
젊은 여 검사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변호사에게 명품 핸드백 대금을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벤츠까지 얻어 타고 다니질 않나, 집권여당의 의원 비서가 헌법기관에 디도스 공격을 하질 않나, 자신이 책임을 지고 있는 정당이 쓰나미를 맞아 파산되기 직전인데도 ‘더 큰 파도’ 운운하며 자리에 연연하질 않나, 연일 국민들 억장 무너지는 일만 연일 계속되고 있다.
나라가 이러니 금반지를 물가산정 품목에서 제외해도 물가는 매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청년이든 장년이든 할 것 없이 실업자는 나날이 높아가니, 아무리 춥고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성난 시민들의 함성은 날로 거세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나라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국회의원이 최루탄을 터트리고, 시위대가 경찰서장을 폭행하고 견장을 뜯어내는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폭거다.
이 모든 폭력사태의 책임도 결국은 정치인들에게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후의 선,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어떤 일이 있어도 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인간이고, 그래야 나라가 견딜 수 있다.
헌법학자 출신 정치인이어서일까?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노라면 나치가 등장할 때의 그 모습 그대로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더욱 섬뜩하고 소름이 끼친다.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인 1923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대원들이 뮌헨의 한 호프집을 습격했다.
이른바 ‘뮌헨반란’이자, 바이마르공화국에 대한 반란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1320억 마르크라는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을 물어내느라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외국 자본 차입’이라는 비상수단을 이용함으로써 일거에 패전국에서 공업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 미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도스(Dawes)가 당장 능력이 없는 독일에 일단 차관부터 제공한 후 차후에 갚도록 하는 제안을 승전국들에게 하면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독일은 외국자본을 들여오면서 각 공장들이 최신 생산설비를 갖추게 되었고, 공장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공업국 독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이 태동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때까지도 유럽의 변방이었던 독일이 학문과 사상, 예술을 꽃 피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때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때를 ‘바이마르 안정기’라고도 한다.
그런데 바로 이 때 히틀러 추종자들이 뮌헨에서 폭거를 자행했다.
뮌헨은 바이에른지방의 대도시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익인사들이 많은 곳이어서 히틀러 추종자들은 일부러 가장 우익적인 도시인 뮌헨을 택한 것이다.
마침 바로 1년 전에 무솔리니가 ‘로마진격’을 통해 이태리에 파시스트체제를 수립했기 때문에 독일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보수우익체제인 바이마르공화국을 전복시키고 전체주의체제를 수립하려고 했던 것이다.
가톨릭교회 일부와 바이에른 왕실이 반기를 들어 가까스로 히틀러를 고립시켰다.
그러자 히틀러는 방향을 의회 쪽으로 틀었다.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대거 의회로 들여보내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세력을 넓힐 수 있게 만들었다.
때마침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공황이 독일에까지 영향을 미치자 국민들은 분노했다.
사회보장을 더 해 달라고 요구했고, 증세에는 반대했다.
정치는 혼란을 거듭했고, 현실정치에 실망한 국민은 새로운 것을 갈망했다.
기존의 사민당이나 공산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물론, 소위 ‘중도 지지층’이라고 불리던 상당수의 온건보수와 온건진보파도 강력한 지도력을 원하며 파시즘적인 히틀러, 그가 이끄는 나치당을 선택했다. 물론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파인 힌덴부르크가 당선되기는 했지만, 잠시 지나가는 바람일 뿐. 힌덴부르크가 리더십을 잃어가면서 농민과 중산층, 심지어 소자본가와 군부까지 나치를 지지하고 나섰다.
급기야 민주공화파가 실각하고 나치정권이 들어섰다.
독일의 비극, 아니 온 인류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돌이켜 보면 18대 국회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쇠고기 파동에 휩쓸리면서 원 구성도 제때에 하지 못 했다.
170석의 한나라당은 무기력했고, 제1야당인 민주당은 국회에 들어오지 않은 채 시청 앞 광장을 겉돌았다. 이렇게 시작된 ‘광장정치’는 급기야 서울시장 후보도 내지 못 한 채 삭풍이 몰아치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가 민주당이 후보도 내지 않고 밀어주었던 의원이 국회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리는 폭거를 감행했다. 전기톱과 해머, 소화기에 이은 국회폭력의 완결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회의장이나 국회사무총장, 한나라당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국회법상 동료의원을 윤리위원회에 제소할 수 있는 시한, 열흘이 째깍째깍 다가왔는데 어느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움직이지 않았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근다.’는 것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 한 제3당의 비례대표에 초선이자 여성인 어느 의원이 나서서 최루탄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구더기 무서워하지 않고 선뜻 나서서 장을 담근 것이다. 그녀의 사무실에는 비난의 욕설 전화가 난무했다. ‘구더기’를 무서워하지 않은 이,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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