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10원짜리 동전이 눈부신 이유
[문화 칼럼]10원짜리 동전이 눈부신 이유
  • 강은교 시인·동아대 명예교수
  • 승인 2012.01.10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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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1원짜리 동전을 찾기가 어렵더니, 요즘엔 10원짜리 동전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어느 마트에서 보았던 광경이다. 등에 아이를 업은 채, 한 여인이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숙이고서는 “동전이 어디로 갔지?” 하며 손을 휘젓고 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저러다 사고가 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 여인은 계속 허리를 굽히고 한 손으로는 등에 업은 아이를 연신 또닥거리며 바닥을 휘젓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실종된 소시민인 ‘나’
그러다가 “요게…? 여기 있었네….” 여인은 에스컬레이터 끝머리에서 무엇인가를 집어 들더니, 근심스럽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막 내려가고 있는 나를 힐끗 보며 중얼거렸다. “아유 참, 그런데 10원짜리였군.” 그러고선 그 여인은 동전을 집어 올려들고 내가 지나갈 때까지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겸연쩍은지, 그 여인은 내가 지나갈 때 나를 향하여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웃기까지 하였다.
나는 순간 10원짜리 동전이 무척 처량해 보였다. 그 여인의 손바닥에서 빛이랄 것도 없는 검은빛을 내고 있는 그 동전이.
그 여인을 지나치면서 힐끗 10원짜리를 바라본 뒤 잔뜩 들어찬 빤짝거리는 상품들 속으로 빨려들면서 나는 내가 마치 10원짜리 동전인 듯한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실종된 나라는 사람, 어쩌면 주민등록번호라든가, 내가 가진 차의 색깔, 또는 아파트 이름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나라는 사람, 이상하게 찢어진 옷을 입고 나가도 아무도 쳐다보며 걱정하지 않을 ‘나’라는 사람, … 소시민인 ‘나’라는 사람….
시인 김수영은 일찍이 이런 시를 썼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대신에/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정말 얼마큼 적으냐…’라고.
60년대에 이 시는 ‘독재’에 용감하게 맞서 투쟁하지 못하는 ‘프티 인텔리겐차’인 자기를 스스로 비웃는 시였으리라. 말하자면 그 시들은 알레고리의 언어로 투쟁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지금 그런 투쟁의 시, 그런 소시민의 참여의 시를 쓰는 시인은 아무도 없다. 자기를 역사의 초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마치 9990원이 10원짜리 동전 한 개가 없어 1만원이 못 될 때에도 10원짜리 동전의 심각함을 따지는 사람이 없듯이 자기라는 존재의 심각성을 따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화폐의 단위는 이제 자동차의 등급처럼 일종의 카스트 제도가 되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아무튼 마트에 갈 때마다 거기 가득 진열된 상품들의 사나운 눈초리를 받으며, 나는 한없이 위축되는 자신을 느낀다.
작은 것의 힘들이 빛났으면
10원짜리 동전은 언제부턴가 무(無)가 되었다.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찾지 않는 그런 무의 존재. 누가 길거리에서 얻어맞아도 아무도 눈길 주지 않고 지나가듯이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물론 손길도 주지 않는 10원짜리 동전…그러나 10원짜리가 없으면 1만원짜리도 있을 수 없다. 무의 힘이다. 무의 힘은 사실 유의 힘보다 강하다.
그 옛날에 노자는 이미 말했었다. ‘…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있음이 이로움이 됨은 없음이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10원짜리 동전이 눈부셔지는 날 그럴 때 ‘나’라는 존재도 빛이 나리라. 이 거대한 역사 속에서, 신카스트 제도 속에서 빛나는 역사의 초석이 되리라.
위험을 무릅써 집어 드는 10원짜리 동전이 없다면 100만원도 1000만원도 1억 원도 이루어질 수 없는 10원짜리 동전의 힘, 아, 작은 것의 힘! 이것이 10원짜리 동전이 흙바닥 속에서도 눈부신, 아니 눈부셨으면 싶은, 아니 번쩍거리는 초현대식 빌딩의 빤질빤질한 대리석 바닥에서도 자랑스럽게 빛나는, 아니 빛났으면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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