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공짜는 좋은 것인가
[충일논단] 공짜는 좋은 것인가
  • 서중권 편집이사
  • 승인 2012.06.1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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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이나 좌판이 펼쳐진 곳을 지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상인이 호객을 하느라 외치는 “골라, 골라, 말만 잘하면 공짜!”가 그것이다. 이 말은 물론 어떤 물건을 정말 공짜로 줄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도 대부분은 이 말에 혹하지 않을뿐더러, 상인에게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따지지도 않는다.
그러면 상인들이 ‘공짜’ 소리를 서슴없이 입에 올리고 행인들이 공짜라는 말에 무감각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쩌면 그것은 ‘공짜란 절대로 없다’는 역설이거나 ‘공짜를 누리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 텐데, 아쉽게도 후자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공짜 심리가 만연해 있으며, ‘공짜라면 양잿물도 먼저 먹는다’는 말까지 있다.
공짜에 대해 국어사전은 ‘힘이나 돈을 들이지 않고 거저 얻은 물건’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공짜가 어디 거저 얻은 물건에만 해당하겠는가. 정당한 대가 없이 얻어서 사용하는 모든 것, 이를테면 수고에 대한 보답 없이 취한 타인의 재능이나 도를 넘은 복지도 상황에 따라서는 공짜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사람 사는 세상에 공짜란 것이 있을까. 한톨의 쌀알은 농부의 여든여덟번 수고로 여물었고, 담장 너머 이웃과 나누는 떡 한그릇에는 평소에 쌓은 정과 신뢰가 함께 담겼다.
맑은 공기와 물도 이제는 그냥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화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공짜를 누리려다 낭패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짜 효도관광을 시켜 준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비싼 물건이나 건강식품을 구입했다가 무르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어르신이 있다.
또 고급 내비게이션을 무료로 주겠다는 업체의 말에 신용카드 정보를 제공했다가 그 내비게이션을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하게 된 젊은이도 있다.
잘 살펴보면 우리 농촌에도 공짜 좋아하다가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육묘장이나 선별장, 저장고 등의 농업시설을 대규모로 지은 곳이 더러 있는데, 이 시설들은 대부분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보조 또는 지원을 받았고 농협의 자금도 투입됐다. 마을마다 지어진 정자에도 지자체의 예산이 들어갔다.
육묘장이나 선별장은 특성상 사용 기간이 매우 제한적이다.
모종을 기르거나 농산물을 출하하는 시기에만 이용되는 것이다. 이처럼 일년에 두어달 정도만 사용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놀리는 시설임에도 필요 이상의 규모로 지어졌다면, 그것은 보조나 지원을 공짜 또는 ‘눈먼 돈’으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에서 돈이 나오면(예산이 배정되면) ‘먼저 찾아 먹는 사람이 임자’라고 하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이젠 이 시각을 바꿔야 한다. 이자가 있든 없든 빚은 어디까지나 빚일 뿐 결코 공짜가 아니다.
이미 지어진 육묘장을 비롯한 농업시설은 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시설을 새로 짓는 경우에도 타당성을 면밀히 분석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먼지만 쌓인 채 유지보수도 못할 정자라면 처음부터 짓지 않는 것이 낫다.
남의 돈으로 마련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공짜가 아니다.
특히 나라의 돈이나 농협의 돈을 낭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복지를 줄이는 것이 되고, 농협의 경영에 부담을 주면서 조합원에 대한 혜택을 줄이는 것이 된다.
과연 공짜는 좋은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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