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은 고문당하는데 정부 손놓고 있나
[사설] 국민은 고문당하는데 정부 손놓고 있나
  • 충남일보
  • 승인 2012.08.0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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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 씨 고문 파문으로 한ㆍ중 외교 갈등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면서 정부가 해결의지를 갖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계속 고문 사실을 부인하고 우리 정부는 재조사를 반복 촉구하며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중국에서 구금 당시 전기고문과 구타를 당했다는 김씨의 주장을 거듭 부인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김영환 씨의 진술은 매우 생생한 반면 중국 측은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부인하는 것을 우리가 수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앞으로 고위급 방문과 양국 간 회담 등이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의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김씨 고문 의혹을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중국의 태도를 바꾸게 할 ‘결정타’가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현재로서는 김씨가 유엔 및 다자 차원에서 개인진정 제도를 활용해 문제를 제기할 경우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것과 중국 내 수감자 전원에 대한 영사 면담을 실시하는 것 외에는 추가 대책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외교 당국은 정부 차원에서 김씨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나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져가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선 ICC가 다루는 ‘인도에 반하는 범죄’는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경우에 국한되기 때문에 김영환 씨 사건처럼 독립적인 사례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 중국은 ‘ICC에 관한 로마 규정’의 가입국이 아니어서 제소가 힘든 상황이다.
중국이 가입한 ICJ에 제소를 하려 해도 명확한 고문 증거가 있어야 한다. 더욱이 중국은 ICJ의 강제관할권(강제재판권)은 수락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우리 국민에 대한 영사 보호를 위해 10년 전부터 중국과 영사협정 체결을 추진해왔지만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중영사협정 체결 논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 93년 4월. 중국이 먼저 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이후 양국 국민간 교류가 급격히 늘면서 양국 모두 영사협정 체결이 필요하다는데는 인식을 같이 하고 지난 2002년 5월 1차 협상을 시작했다. 이후 2007년 1월 2차, 2010년 1월 3차, 그리고 지난해 12월에 4차 협상을 했지만 양측의 이견이 많아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정부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면 시민사회와 인권단체가 유엔 인권이사회나 국제 인권회의 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형태로 국제문제화하는 것이다.
더 큰 과제는 제2, 제3의 김영환 사건을 막는데 초점을 맞추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문제가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준다고 그냥 덮기보다는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국에 대한 중국의 인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한국이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매우 중시하는 국가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 한중 영사협정처럼 영사 면접 등에 관한 절차를 제도화시켜 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고민만 하는 정부가 이같은 적극적 대안을 마련해 나갈 지는 미지수다.
자국민이 고문을 당해도 항의하고 응징하는 제도마련도 못하는 정부가 있다면 이는 매우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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