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값등록금’의 허실
[기고] ‘반값등록금’의 허실
  • 정량부 동의대 총장
  • 승인 2012.08.2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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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각 정당은 대선을 앞두고 다투어 공약을 내놓고 있다. 선거 때면 인기몰이 식의 숱한 공약들이 나오지만 재원에 대한 대책도 없는 공약이 문제다. 반년 만에 예산이 없어 폐지될 위기에 있는 무상보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원 마련 대책없는 공약이 문제.
언제나 선거 때면 나오는 공약 중 하나가 반값 시리즈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처음은 아마도 ‘반값아파트’일 것이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반값등록금이란 말이 세상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부산지역 청년들이 대선에서 해결되어야 할 중요 과제로 생각한다는 보도도 있다. 최근에는 반값기숙사란 말에 이어 반값교복을 주장하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의 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아무튼 말처럼 반값으로 세상에 튼실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대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값등록금은 국가가 고등교육비를 부담하지 않고는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로 현재 대학들을 더욱 곤경에 빠트리고 있다.
최근 어느 대선 후보자는 현재 사립대학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지방국립대학에 대해 재정지원을 확대하여 등록금을 반값으로 해야 한다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불이익과 차별이 더욱 심화된다. 필자는 오히려 현재 사립대학의 등록금 수준을 (국가의 지원에 의해)국립 정도로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대학은 공정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고 그 경쟁의 결과가 국가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등학교의 현장에서 이런 사실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초중등교육에 대한 정부부담률은 OECD 평균에 근접하고 있다. 하지만 고등교육비에 대한 정부부담은 22%에 불과하여 OECD 평균인 70%에 태부족한 실정이다. 또 우리나라는 GDP 규모가 세계 9위인데, 학생 1인당 고등교육비 투자 순위가 세계 23위라는 사실로도 얼마나 국가경제규모에 비해 고등교육의 투자가 미흡한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4년제 대학 수는 200여 개이다. 그 중 국립대학이 40여 개이고 사립대학이 160여 개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미흡한 국가 지원도 그나마 대학 수의 20%를 점하는 국립대학에 47%를 지원하고, 대학 수의 80%를 점하는 사립대학에는 12%를 지원하고 있다.
최근 사립대의 재정수입구조를 보면 등록금 수입이 65.9%에 이른다. 국고보조금 수입은 3.1% 정도이다. 은행의 정기예금 이자 수준이다. 미국의 사립대 등록금 수입 비율이 26%로 우리나라의 국공립 대학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이 또한 국가가 지원하는 고등교육비의 한계가 드러난다. 이마저도 서울권의 대학들이 독식을 하고 나면 지방의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은 더 열악해진다. 그래서 최근 일부 사립대학에서는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을 테니 대학을 아예 재정지원제한대학의 카테고리로 묶는 등의 평가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국가가 부담하여야 할 고등교육비가 미흡한 나라이다. 선진국처럼 등록금이 낮아 학생이 가고 싶어 하는 국립대학의 수가 제한되다 보니, 사립대학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비를 수요자인 학생이 부담할 수밖에 없어 등록금이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마치 대학이 큰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에 등록금이 높은 것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수많은 대학 중 일부의 잘못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학 전체가 오도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대학재정지원법으로 활로 찾아야.
또 지금의 분위기처럼 대학이 등록금을 무리하게 인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다면 그 결과는 대학교육의 질 하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식기반사회의 경쟁력이 대학의 경쟁력이고 그것이 곧 국가경쟁력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걱정스러운 일이다. 빨리 국가가 선진국처럼 대학의 교육비를 일정부분 부담할 수 있도록 대학재정지원법을 제정하여 대학의 등록금도 인하하고 고등교육의 수준도 높여, 세계에 더욱 우뚝 솟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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