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詩 권하는 선생님
[기고] 詩 권하는 선생님
  • 김주연 임실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12.08.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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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부터 카풀을 시작했다. 필자와 비슷한 연배인 선생님 두 분과 경력이 좀 있으신 선생님 그리고 필자, 이렇게 네 명이 카풀 가족이 되었다. 입 안의 혀처럼 하도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들인지라 매일 네버엔딩 스토리로 출퇴근시간이 너무 짧다며 아쉬워해 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주제는 주로 신변잡기적인 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얼마전에는 각자의 학창시절을 돌아보며 그 때 배웠던 시에 대한 추억들을 떠올려 보았다.
‘성북동 비둘기’며 ‘승무’, ‘님의 침묵’,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등 더듬더듬 한 줄 두 줄 서로 생각나는 부분을 말해가며 주옥같은 명시들을 추억하는 동안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컥한 심정이 되었다.
‘이 시가 이렇게 아름다웠었구나’ 새삼 느끼게 된 것이다. 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외우던 그 시가 이토록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연신 감탄하였다.
‘님의 침묵’에서 ‘님’은 ‘조국’을 의미한다는 것이 그 시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지며, 그런 것들을 외우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시를 사랑한다해도 국어 점수는 신통치 못할 교육현실에 대한 반성과 탄식도 했던 것 같다.
그런 ‘멋진’ 고민과 반성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퍽 만족스러워 급기야 앞으로 카풀하는 아침마다 시 한 편을 동행시키자는데 뜻을 모았다. 그 뒤부터 우리 카풀은 출근하는 날 아침이면 향기로운 시 한 편을 뒷좌석 한 가운데에 모셔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시 읽는 일과 시 쓰는 일은 요즘처럼 스마트한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인지 모른다. 뭐든지 빨리 익히고 판단하고 활용해야 경쟁에서 이기는 사회구조 속에서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판단을 유보하고, 성찰해야 하는 이 일은 웬만한 베짱이 아니고서는 나설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비록 짧은 경력이긴 하지만 학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육현장에서 만난 아이들 중 시인이 꿈이라는 아이를 만나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문학캠프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 모인 아이들도 무얼 하며 살고 싶냐는 질문에 장래희망의 단골손님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긴 처음으로 ‘엄마, 아빠’ 등을 말하기 훨씬 전부터 엄마아빠의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눌러보며 현란한 화면의 변화나 애니메이션 동영상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 아닌가…
뭐든 빨리빨리 끝내고 싶어 하고, 다음단계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짧은 시나마 읽고 느끼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 욕심을 내서 한 편이라도 쓰게 만들려면 진심어린 설득과 애처로운 사정과 최후의 수단인 협상(?)의 단계를 거쳐야 가까스로 자신의 생각이 담긴 성의 있는 시가 탄생된다.
그 순간 아이들은 ‘잠시 멈춤’을 하고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장점도 단점도,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다. 다만 성찰의 대상일 뿐이다’에 대한 무의식적인 깨달음이 우리 아이들에게서 일어나는 때가 바로 시를 쓰고 있는 그 순간이 아닌가 한다.
겉모습만 보고 무엇인가를 쉽게 판단하고 단정 짓는 대신 그 내면에 숨겨진 무엇인가를 인내심을 갖고 찾아보는 일은 시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동시에 필수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이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대인관계를 맺을 때 가장 강조하는 항목인걸 보면 교사인 내가 왜 평생에 걸쳐 시 쓰기를 권해야 하는 것인지 답을 알 것도 같다.
오늘 하루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멈출 수 없는 시 권하기 본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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