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선족을 교포나 동포로 불러주자
[기고] 조선족을 교포나 동포로 불러주자
  • 이태현 수필가
  • 승인 2012.09.05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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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2012년 8월 초 4박5일 일정으로 중국 산동성과 인근지역 주민들의 생활상을 직접 살폈다. 정부단체의 일원으로 북한과 인접한 곳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 후 현지 가이드의 깜짝 발언에 가슴이 아려오고 목울대가 아파왔다.
조선족 3세라고 밝힌 가이드는 할아버지의 지극한 고국 사랑으로 한글을 배우고 익혀서 중국에서 인기있는 현 직업에 충실히 근무하며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에는 현재 민족의 피가 흐르는 1억명 이상의 우리를 보고 동포나 교포로 부르지 않고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현실에 중국인으로부터도 멸시를 받거나 동족으로의 거부를 받고 있는 실정에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에 살고 있는 한국인을 교포나 동포로 부르고 있는데 유독 중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조선족이라고 불러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있다며 귀국하면 재중교포나 동포로 불러 주도록 정부에 건의도 하고 홍보도 해 달라며 간절한 부탁을 했다.
그는 또 귀국해 식당이나 공장 등 인근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동포들을 만나면 업신여기거나 조선족이라고 부르지 말고 교포나 동포로 불러 달라며 눈시울을 붉혀서 우리 일행은 박수로 화답해 줬다. 특히 부모님도 서울에서 10년이 넘게 살며 직장생활에 충실하면서 귀국을 미루고 아예 영주권을 받아 김해 김 씨의 피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조국에서 정착하고 싶다는 희망을 내 보였다는 것이다.
무심코 가이드라는 개념으로만 불러오다가 석가장 정정공항에서 명함 한 장을 주고받았다. 모 관광회사 과장 김광호라고 적혀 있었다. 분명히 우리나라 김해 김 씨라고 당당히 밝힌 가이드의 뜨거운 애국정신에 반하고 말았다.
실제로 필자는 현직시절 한중교류가 시작되던 직후 취재차 방중을 비롯해 퇴직 후 관광 등으로 이번이 12번째 방문이었지만 김광호 씨와 같은 가이드는 만나보지 못했다. 거의가 직업적인 테두리 안에서 역사적이거나 관광자원 등에만 안내를 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귀국길인 국내 관광버스 안에서 우리 일행은 중국 가이드가 주문한 사안을 심도 있게 판단 중앙부처에 전달하고 우리 고향에서만이라도 재미교포나 재일 교포처럼 중국교포로 부르자고 약속했다.
해방 67년이 됐는데도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쓰며 위안부 문제도 사과치 않은 괘씸한 일본 거주인에게도 재일교포라 부르는데 재중교포라고 부르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역사의 뒤안길에서 어떤 과오나 현실이 있을지라도 다문화가족이라고 부르며 도와주고 있는 우리정부의 대국적 차원에서 볼 때 조심스럽게 주장해 본다.
10여 년 전 강현욱 지사 시절 전북도내 시장군수·의장단 일행과 농기계공장 설립문제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우리는 동포로 불렀다. 평통자문위원의 한사람으로 개성공단과 고성군을 방문해 자전거를 전달하고 돌아왔을 때도 그들도 우리보고 남측 동포라고 불러 줬다. 60년대만 해도 우리는 북한을 오랑캐라고 배웠고 불렀다. 그 오랑캐를 지금에 와서는 동포라 칭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피와 성씨를 가진 채 불행하게 살고 있는 우리 동포를 이제는 챙겨줘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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