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아이들이 죽어간다
[충일논단] 아이들이 죽어간다
  • 박해용 부장 편집국 경제행정팀
  • 승인 2012.09.06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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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의 실타래에 갇힌 아이들에게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해법을 두고 강공으로 밀어부치고 있는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학교폭력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한 정부가 학교 안에 경찰력을 투입하고 교사들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 이른 바 ‘우리 안에 가두고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다.
부모의 책임도 늘리고 학교가 폭력을 야기하는 학생들을 격리하거나 다른 학교로 아예 보내버리는 그런 강경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물리적인 조치일 뿐이다. 우리 제도가 규제를 통해 사회를 통제해 오던 그릇된 관습의 일부가 그대로 어린 자녀들의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문제가 무엇일까. 일방적인 잣대로 예단하는 기성세대의 습관이 곧 가능성의 세계를 짓밟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매우 참혹한 결론으로 나올 것이라는 우려다. 어른들이 만들어 낸 학교폭력예방법은 가히 수준급이다. 어른들에게는 그런 것일 뿐 그러나 자녀들의 학교공간에는 맞지 않다. 그런 제도를 강제규정으로 만들어 학교공간에 구겨넣은 결과 우리 학교는 표면적으로는 적어도 폭력이 줄어들고 있다.
발표된 학교폭력 해결방안을 요약해보면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 강화/담당 교사에 대한 처벌 강화로 압축된다. 문제는 자성없는 교육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빠뜨린 채 지금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보여주기 식의, 혹은 임시방편적인 대처라는 점이다.
또 다른 문제는 학교폭력의 숨겨진 원인, 또래 학생들의 무관심이다. 그동안 학교폭력에 대한 얘기는 심심치 않게 들려왔지만 작년에 자살한 학생들의 경우 그들의 편지나 일기를 통해 학생들이 받았던 괴롭힘이 여느 때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다. 이 역시 결론은 괴롭힘과 폭력을 당한 학생의 같은 반이나 주변 친구들이 대체로 자신의 옆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점이다.
마치 이를 밝혀 처결하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폭력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그런 현상에 대한 대처방법이 없다. 수레소리만 요란하지 내용은 텅 비어있다는 것이니 당연 정부정책이 요란한 빈수레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에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있으며, 또래가 묵인하고 있는 이상 학교폭력은 줄어들지 않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무관심의 현상은 대학생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 대학생들이 현재 대학에서 느끼고 있는 소외감, 고립감은 구성원들의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낮은 기대에서 비롯되고 있다.
대학은 잠깐 거쳐가는 ‘취업 학원’이라는 인식이 점점 강해지고 있으며, 이는 대학 공동체를 더 삭막하게 만들어 구성원들을 더욱 무관심하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학습의 악순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연계선상에서 지속됨으로써 사회로 나온 사회구성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 큰 문제다. 사회적 병리현상으로까지 확대되는 환경학습의 대물림은 곧 우리 사회가 불의에 관대하고 부정에 눈감으며 폭력에 아첨하는 그런 형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갖게 된다.
요즘 대학생들은 대체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고, 때로는 냉소적이기까지 한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만 하려다 보니 학생들의 활동이 굉장히 단순해졌고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읽는 것은 취업 준비용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었으며 각종 선거에 대한 투표율 역시 저조해졌다.
그러니 심지어는 용산참사나 쌍용차 사태처럼 사람이 죽었던 일이 크게 이슈가 되어도 별 관심이 없고 시큰둥하게 됐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이런 환경의 책임은 누구일까. 기성세대들이다. 그러니 법을 강화하고 처벌수준을 높인다고 결코 해결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이같은 정신영역의 문제다. 학교폭력을 보는 시각 역시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 때문이다. 학교폭력에 학생이 스스로 참여하는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다. 발생 즉시 적그적으로 대처하는 환경을 만들고 학생들 스스로가 이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가지도록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예방법에는 초기 방치와 적극적인 대처방법들이 없다.
이왕 강압적인 방법으로 학교폭력을 학교로부터 격리하려면 물리적 방법에 환경적 요인을 보다 비중있게 도입해 모두의 참여를 통한 근절책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려면 이 문제를 학교로부터 더 많이 우리 사회에 공론화 시켜나가고 이를 통해 자발적 참여환경을 집중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금같은 모양새의 대책은 경찰과 교사들의 업무를 확대시키고 학생들을 가혹한 환경에 내몰면서 악순환의 고리는 끊지 못하는 큰 우려를 범할 개연성이 많다. 결국 이 틀 안에서 우리 자녀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는 우리 어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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