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은 영업 중
교수님은 영업 중
  • 권광식 교사 천안 도하초
  • 승인 2012.10.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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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고속도로 통행량 역대 최다의 기록을 세우며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가 저물어간다. 한가위는 짧은 만남이라는 아쉬움은 남지만 따뜻한 가족의 정으로 재 충전의 기회가 되었다. 또한 한가위는 유난히 잦았던 올 여름 모든 재해의 아픔을 덮는 가족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 명절 연휴 마지막 날 한 공영파 TV의 메인 뉴스 시간에 ‘교수님은 세일 중’이라는 집중 보도가 있었다. 대학 교수들이 학자적 자존심은 고사하고 문전 박대를 받아가며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사건이 지난 7월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 당시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된 내용을 요약해 보았다. 대전의 한 4년제 대학교수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대전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대학 취업률 발표 전날 밤인 지난 7월 22일 오후 7시 57분께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Y씨(56)가 화장실에서 숨져 있는 것을 부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유족은 경찰 조사에서 “Y 교수가 평소 졸업생의 취업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족의 말대로라면 대학 취업률에 등 떠밀린 교수가 압박을 못 이겨 자살한 것이 된다. 깜짝 놀란 대학 측이 “Y 교수의 학과는 순수 인문·예술 전공이어서 (졸업생) 취업률에 대한 압박은 없었다.”고 부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취업률이 낮았던 이 대학은 지난해 재정 지원 제한대학에 포함됐다. 퇴출당하지 않으려면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 이 대학은 절치부심 끝에 지난해 50%대였던 취업률을 올해 60%대로 끌어올렸다. 획기적인 개선이다. 취업률 스트레스와 자살과의 상관관계가 이 사건의 핵심이다. 이 대학교수의 죽음 예고된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재앙은 대학의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 교수확보율을 들이대며 대학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을 때부터 예견됐다. 그 동안의 우려가 Y 교수 사건으로 현실화됐을 뿐이다. 이런, 사람 잡는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Y 교수는 줄을 선다고 봐야 한다. 대학교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취업률을 가지고 대학 서열을 매기는 나라는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없다. 미국도 그렇고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학과 및 학교의 특성 등이 무시된 획일적인 잣대로 재단하는 경우는 2012년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이상한 교육 현실에서 밖에는 없을 것이다. 상아탑, 진리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정체성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대학은 교육과 연구가 본령이다. 미래의 가치를 만드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이것이 고루하고 한심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가치의 추구가 마땅히 대학이 해야 할 본령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대학의 현실은 입시학원화 되어버린 죽어버린 상아탑이 있을 뿐이다. 학과를 불문하고 입학 초기부터 공무원 시험과 취업에 매진하는 학교, 또 이것을 취업률이라는 잣대로 암묵적으로 장려하고 배려하는 정책 당국이 있다. 취업률 경쟁이 대학의 모든 것이 되어 버린 이런 환경 속에서 대학 본래의 가치는 빛을 잃고 있다.
이 정부 들어서 2011년 취업률 등 10여 개 이상의 지표를 가지고 해마다 대학의 학사 운영 상황을 점검하여 재정지원제한대학, 대출제한대학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대학을 한 줄로 세우고 있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사는 학생으로서 대출제한대학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대학에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는 원서를 넣을 리 없다.
상아탑이 이렇게 평가에 휘둘리는 판이니 대학교수가 영업 맨으로 나서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내년 또 대학 평가라는 굿판의 희생양이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합의하에 무언가 새로운 대책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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