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離婚),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이혼(離婚),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 최춘식 국장
  • 승인 2007.02.2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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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이혼제도는 기독교적인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고 오직 봉건적 가족제도에 입각한 남계혈통존중사상(男系血統尊重思想)으로 남자 전권의 이혼만이 인정되었다. 우리 나라의 여성은 삼종지덕(三從之德)을 갖추고 여필종부(女必從夫)하는 것만이 아름다운 미덕이었다. 그러므로 여자의 운명은 혼인하면 그 가(家)의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아 주는 것이 유일한 임무였고 이혼같은 것은 생각할수도 없는것 이었다.
우리 이혼제도는 일본 민법의 것을 받아들였는데, 일본의 구민법은 봉건적 가족제도에 맞춘 것이기 때문에 부부불평등한 것이었고 재판이혼의 원인은 유책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 이 재판이혼은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적용되어 왔지만 해방독립 후 판례를 통해 이혼의 실태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우리의 실태에서 협의 이혼의 자유는 부(父)의 자유는 될지언정 처(妻)의 자유는 아니었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이혼은 외국에 비해 낮지만 이혼 증가율의 속도는 외국에 비해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필요악으로서의 이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파스칼라는 우리 인간이 천사도 동물도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이혼제도는 존재하고 또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영속적인 공동생활을 위해 일남일여가가 혼인한 이상은 이혼이란 비극을 방지할 수 있는 지혜가 요청된다. 특히 자녀까지 가진 부부가 자신들만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여 어린 자녀를 남겨둔 채 이혼한다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생을 함께 하겠다고 굳게 약속한 부부가 이혼을 하게되면 법률은 이들을 남남으로 돌려 놓지만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단절되지 않는다. 부모 어느한쪽의 보살핌이 없을때 그 자녀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따라서 이혼은 자녀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마는 것이다.
이로인해 자살하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방황끝에 비행소년·소녀로 전락해서 사회문제를 야기시키는 등 자식들만의 희생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혼한 부부사이의 자녀를 삼두마차(三頭馬車)의 가운데에 있는 말에 비유해 그가 오른쪽 말을 따르려고 하면 왼쪽 말이 끌어 말이 곧바로 자신의 코스를 달리지 못하는 것과도 같을 수 있다.
담넘어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속설이 있다. 처음 만날 때 좋은 선택으로 만났으면 한발 양보하면서 한세상 적당히 사는것이 자신을 위하고 자식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혼문제의 권위자인 미국의 윌러스타인 박사는 이혼 가정의 자녀가 충격으로부터 벗어나 정상적으로 회복하는데는 10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부부는 이혼해도 자기 자녀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혼 후의 남녀가 모두 가장 어려웠던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자녀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다. 이는 불행한 결혼생활이라도 계속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자녀때문이라는 통념과 일치하는 것이며 여자들의 경우 자녀들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여자들은 외로움, 사회참여의 어려움, 경제적인 면과 정신적·정서적 면에서 더 심하다고 한다. 결혼에 실패했던 좌절감과 함께 사회의 편견도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이혼한 여성은 이유없이 동료들로부터 소외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혼은 자신을 망치고 자녀들에게까지 큰 상처를 입히는 가족 모두에게의 큰 불행이라는 결론이다. 자연의 원리로나 현실적인 견지에서 성숙한 결혼 생활만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100년도 못살고 죽게되는 것이다. 우리모두는 한발 양보하고 항상 참는다는 미덕으로 모두를 이해하고 극복한다면 이혼 또한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밝은 가정, 살기좋은 사회 만드는데 동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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