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숭동(韓崇東)의 힐링캠프] ‘민주화’, ‘운지’… 청소년 파고드는 일베
[한숭동(韓崇東)의 힐링캠프] ‘민주화’, ‘운지’… 청소년 파고드는 일베
  • 한숭동 前 대덕대 총장·국립한국교통대학교 석좌교수
  • 승인 2013.06.0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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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과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베’가 유행하고 있다. 일베는 ‘일간베스트’의 줄임말이다. 디시인사이드에서 파생된 인터넷 유머사이트로 인터넷의 우파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터넷 커뮤니티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던 극우 성향의 유머사이트라고 말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일베의 정치 게시판은 정치에 관한 글이 올라오는 곳이다. 험악한 말이 오고가기도 하고 때로는 동의하거나, 몰매를 던지기도 한다. 정치적 내용이지만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것이 많다. 이곳을 중심으로 극우적 역사관과 정치관이 인터넷을 통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왜곡과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등 일베 사용자들의 비상식적인 일탈행위에 대해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폭동’, ‘북한군 개입’, ‘홍어 배달상자’ 등 계속되는 5·18 폄하에 참다 못한 광주시는 마침내 강력 대응에 나섰다. 5·18 희생자를 수산시장 홍어에 비유한 것이다. 참말로 개탄스러운 작태다.
개드립 게시판도 있다. 쉽게 말해 ‘드립’이란 ‘개그’다. 즉흥적 연주나 대사인 애드립(ad lib)에서 나왔다. 청소년들이나 인터넷에선 많이 통용된다. 개드립이란 두 가지 뜻으로 나뉜다. 재미가 없거나 어이없는 개그 등 웃기지 않는 게 개드립이고, 드립은 그저 웃기려고 하는 모든 개그를 통칭하고 있다. 짤방은 짤림 방지용 게시물을 말한다. 재미없는 글만 쓰면 게시판 운영자가 삭제할 지 모르니 흥미 있는 사진 등을 올리는 게시판 이다.
일상속에서도 청소년 사이에 ‘일베어(語)’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운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하하는 대표적 일베어다. 청소년들은 ‘아래로 떨어진다’거나 ‘상황이 나빠졌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라디언’은 호남인을, ‘김치년’은 한국의 20대나 30대 젊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다. ‘삼일한’은 ‘여성은 삼일에 한 번씩 때려야 말을 듣는다’를 줄인 용어다. 또 ‘통수’는 뒤통수를 줄인 것으로, 전라도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얼마전 유명 아이돌 그룹 ‘시크릿’의 한 멤버가 라디오 방송에서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이에 누리꾼들은 즉각 숭고한 민주화의 뜻을 부정적 의미로 사용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심각성을 느낀 소속사는 “부주의한 언행으로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일베에서 ‘민주화’라는 단어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소수를 집단으로 억압 또는 폭행하거나 언어폭력을 하는 행위’란 뜻으로 사용된다. ‘비추천’ 같은 부정적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일베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져가면서 학생들도 거부할 틈조차 없이 ‘일베어’에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가뜩이나 정규교육 과정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인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선 학교에서 현대사 교육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지난 2011년부터 교과 과정이 개편되면서 근·현대사 교육 시간은 더 줄어들었다. 그 전까지는 ‘국사’와 ‘한국근현대사’, ‘세계사’가 각각 하나의 과목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새 교육 과정에서는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사’로 조정됐다. 야스쿠니 신사를 ‘젠틀맨’, 안중근 의사를 ‘도시락 폭탄 던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그 단적인 실례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민주화’를 나쁜 뜻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그동안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현대사 바로 알리기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과 힐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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