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원칙 따지는 ‘신뢰프로세스’에 융통성 있나
[충일논단] 원칙 따지는 ‘신뢰프로세스’에 융통성 있나
  • 이범영 부국장 당진 주재
  • 승인 2013.06.1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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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중단과 금강산관광사업 등 북한에 투자된 대형프로젝트의 재가동문제 등 어려움이 놓인 가운데 진행된 남북회담이 막판에 불발된 것과 관련, 원칙도 중요하지만 단계적 융통성도 필요했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애시당초 정부는 회담추진과정에서 우선 쉬운 것부터 해나가자는 원칙을 밝혔었던 만큼 당연히 회담시작이 중요했다. 하지만 끝까지 원칙을 놓고 협상한 결과 북측의 선택권을 가로막는 결과가 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다시 기로에 섰다.
남북회담은 지금까지 모두 21차례가 열렸고 지금까지 한단계 높은 급의 대표가 한국측에서 나왔던 것은 그동안의 회담의 관례처럼 돼 왔었다. 당연히 같은 격식을 맞추는 것이 기본이고 국제적 관례지만 남북간의 경우는 그렇게 해오지 않았었다.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문을 닫아버린 북측의 속내는 고사하고 어떻게 이를 다시 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더욱이 개성공단의 경우 하루가 아까울 정도로 상황이 그리 녹녹치가 않다. 상주했던 기업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고 시설재가동 문제 역시 쉽지만은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부담도 적지않다. 지난 4월 초 북한의 개성공단 잠정 가동중단 사태로 ‘신뢰 프로세스’가 시험대에 오른데 이어 두 번째 시련기를 맞게 된 때문이다.
이제 남은 공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넘겨졌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원칙과 신뢰를 내세워 수석대표의 격을 따진 박 대통령의 압박이 과했던 나머지 신뢰프로세스를 작동시켜보지도 못하는 원치 않았던 결과를 초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부담요인이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개성공단 사태 당시와 같이 이번에도 ‘원칙과 상식에 기반을 둔 정상적 남북관계 모색’이라는 박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원칙을 버리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북한에 끌려다니는 것은 남북관계의 정상화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기본 입장이라는 설명이다.
임기응변식 땜질처방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기본적 체질’을 바꾸는 장기적 ‘리세팅 처방전’을 강구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매우 보편적인 것이 아닌 특수한 상대성을 가진 점이 문제다. 원칙도 글로벌 스탠다드도 중요하지만 수용을 바라는 북한을 기다리는 입장이라면 기약할 수 없는 그런 관계에서 우리 기업들이 입을 피해가 너무 커질 수 있다는 어려움도 결코 적지않다.
더구나 이번 방식이 박 대통령이 현재와 같은 단호한 입장을 견지할 경우,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대화의 장으로 나오겠다는 신호를 던졌다는 평가를 받은 북한을 다시 ‘고립과 도발’의 영역으로 밀어 넣었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10일 박대통령은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통일부를 중심으로 외교안보 관련 부처들이 잘 준비하고 정부가 그동안 견지해온 제반 원칙들과 국민의 여러가지 여망을 잘 감안해 남북 회담에 잘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같은 날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글로벌녹색성장기구 의장을 접견한 자리에서는 “이번 남북 대화를 통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해 남북 공동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해나가겠다.”고 했다.
원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가동에 대한 기대감을 동시에 내비친 것이다.
국민들은 개성공단 정상화,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 재개 등 시급한 현안부터 차근 차근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1차적으로 서로 신뢰를 구축하고, 회담 정례화를 위한 기반부터 다지길 기대했으나 회담은 열리지 못했다.
그 결과 북한에 대화 거부의 명분을 주게 돼 남북간 경색이 장기화하고, 결국엔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계속돼 온 남북관계의 단절이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즉 과도한 원칙고수가 북한에 압박 일변도로 비쳐진다면 박 대통령의 신뢰프로세스 역시 이명박 정부의 엄격한 선(先)비핵화론가 다를 것이 없다는 지적인 것이다.
당장 민주당 김한길 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소모적인 기싸움으로 한반도 평화구축이라는 본질을 놓쳐버렸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국자는 ‘다시 실무급 회담을 하자고 우리가 제의하면 닫혀진 문이 곧 열릴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생각이다.
때문에 어떤 방식이든 회담부터 열어두고 단계마다 조금씩 우리 목표를 추진하는 융통성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원칙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운용방식에는 문제가 정말 없었는지 우리 정부가 새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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