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승용 칼럼] 노인문제와 가정의 가치
[엄승용 칼럼] 노인문제와 가정의 가치
  • 엄승용 사단법인 문화자원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3.07.1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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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상위 1%’의 어르신을 위한 주거공간이라고 내세운 한 노인시설을 찾은 적이 있다. 재력을 갖춘 노인들이 입주하여 첨단 의료서비스와 각종 헬스, 문화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노년을 윤택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날 방문목적은 시설에 입주하여 생활하는 한 전직 교수와 만나는 것이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함께 구내 뷔페식당에 들어갔다. 깔끔한 차림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테이블에 앉아 야채위주의 몇 가지 안 되는 음식을 먹으면서 편안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한국에서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시골의 노인정에서 만나는 많은 어르신들과 비교하면서 여러 가지 상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난 이곳을 떠날 거야” 함께 식사를 하던 그 분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 분은 처음 기대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그 곳에 입주를 하였는데 막상 들어와서 생활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인들만 모여 있으니 한 사람이라도 병상에 눕거나 아니면 죽어나가면 전체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어떤 노인은 우울증까지 경함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주거시설이나 문화생활 프로그램으로도 그러한 정서적인 기복에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정해진 한 길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면 일종의 수용소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노인복지 정책이 노인정을 짓고 노인들에게 생활비를 주는 것으로 해결되지는 않지. 노인 일자리 창출도 좋고 노인들을 위한 커뮤니티도 좋아. 정작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정이야. 사회가 변하여 핵가족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함께 살아가는 생활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 필요해” 복지문제의 시작과 끝이 가정이라는 그 분의 말은 현실을 외면한 부분도 있지만 가정의 가치가 건강한 사회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맞는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야기되는 가정해체가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노인문제 뿐만 아니라 청소년 문제도 사실상 가정의 건강성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 양육, 보호, 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단위’로 가정을 정의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복지와 교육과 같은 일상적 삶에 관한 문제는 국가의 관료주의와 대자본의 상업주의에 맡기기 전에 가정에서 해법을 찾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회조직의 기본단위인 가정의 가지를 바르게 복원하지 않고는 급속하게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가정의 문제가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나 공공단체에서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잘 나가는 자식이 서울에서 바쁘다는 이유로 농어촌에 부모들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부양의무자가 건재하기 때문에 법적인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어 복지정책의 혜택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노인들은 젊어서 자식들 교육시키기 위해서 논밭에서 열심히 일했고 논밭 팔아 자식들 사업자금 대어주기도 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효성을 강조하면서 그러한 자식들에게 부모를 공양하고 가정을 세우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결국 가정을 세우는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전통적인 효도문화를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학교교육, 사회교육 등 다양한 경로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효도의 미덕이 젊은 세대가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작년에 한 종교단체의 아버지학교에 참가한 적이 있다. 참가자들은 매번 이런 구호를 외친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바로 선다. 건강한 가정은 아버지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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