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 日 時 論] 진정한 ‘영원한 자유’
[忠 日 時 論] 진정한 ‘영원한 자유’
  • 김인철 편집국장
  • 승인 2007.10.1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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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동지’로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씨가 엊그제 구속 수감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검찰의 남은 의혹수사와 기소, 그리고 법정심리 등 만을 남기게 됐다.
특히 그간 검찰 조사를 열 두 차례나 받으면서 단 한 번도 기자들에게 말 한 마디 응하지 않던 신씨가 구속 수감 되기 직전 구치소로 향하면서 그제야 한 마디 했다.
“그동안 잘못된 판단으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고 부끄럽다”며 소감을 밝혔던 것이다. 그의 한 마디 말을 귀로 확인하기 무섭게, 이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녀의 손에 꼬옥 들려진 ‘영원한 자유’ 제목의 책이 그 것 이었다.
그녀의 변호인이 그녀가 영장실질 심사를 받기 직전에 건네준 것이었다는데, 신씨는 이 책을 구치소 감방에도 갖고 들어갔다. 그곳서도 그 책을 읽으며 지난날을 잊고자 할 것이다.
부적절한 관계 속에 달콤한 밀어를 나누며 보냈던 과거와 오늘의 영어(囹圄) 신세를 한탄하며 복잡한 심경과 좌절감을 달래려고 할 지도 모른다.
‘산은 산, 물은 물’이란 법어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성철 큰스님의 이 법어집은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삶을 대학생과 사부대중에게 하신 설법을 큰 줄기 삼아 선과 교에 관한 부처님의 일관된 사상과 법문을 담은 책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법어집에서는 제 종교에 대한 일별과 불생불멸의 세계, 무한한 정신력, 물심불이(物心不二)의 세계를 설파하면서 영겁불망(永劫不忘)의 영원한 자유의 세계를 제시한다.
자유는 남에게 얽매이거나 강제 혹은 속박을 받지 않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독재에 항거할 수 있었던 것도 자유라고 하는 가치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유는 강제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로부터의 자유’다. 그것은 소극적 자유다. 보다 적극적 자유는 ‘…로의 자유’다.
철학에서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함이고, 정치학에서의 자유는 근대에 이르러 평등과 함께 인간의 기본권이 정립되면서 찾은 자유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높은 단계의 자유는 아무래도 종교적 자유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종교에서의 자유는 영원한 자유를 지향함인데, 영원한 자유는 모든 사부대중 혹은 천지간에 모든 피조물들의 소망이고 희망이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길이 곧 영원한 자유를 얻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모시며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신의 주관권이 아닌, 하나님의 주관권 안에 사는 것이 곧 영원한 자유의 길이라고 믿는다. 그러려면 자신의 주관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도 바울 선생도 “나도 죽은 사람같이 모든 것을 버렸다”고 했다. 꼭 종교적인 가르침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영원한 자유에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엿볼 수 있다.
반대로, 속세적이고 세상적인 자유함은 자칫 방종과 무분별한 세계로 빠지기 쉽다. 방종한 자유는 곤고한 상태에 이르고 만다.
승승장구했던 권력의 실세로서 곡학아세(曲學阿世) 했던 변양균 전 청와대정책실장과 그를 등에 업으며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성장한 신씨가 그들 둘만의 영원한 자유를 위해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을 무렵 찾아온 파국의 시나리오.
한때 눈꼽 만큼이라도 세속적 해피엔딩을 기대했었다면 이젠 조용히 참회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영원한 자유’를 위해 기도라도 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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