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쪽은 개별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 비슷한 소송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는 듯하다. 게다가 일본군 위안부와 한국인 원폭피해자, 사할린 동포 등 한일협정 체결 당시 거론되지 않았던 이들과 관련된 문제에서도 불리해질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현재 법적 구제절차가 진행 중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미수금 등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 부속협정인 ‘재산 및 청구권에 한한 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청구권협정)’에 명문으로 들어갔다. 2005년 공개된 국내 관련 문서에는 심지어 당시 일본측이 “개인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고, 한국측이 “우리 정부가 일괄 처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온다. 반면 1975년 12월17일 청구권 협정의 종료 때까지 전체 5억 달러 가운데 민간 보상에는 겨우 9.2%만 쓰였다. 당시 국가가 국민의 돈을 유용ㆍ횡령했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는 추가적 구제ㆍ지원에 나섰으나 아직 완전한 구제에 이르지 못했다. 청구권 협상 당시 거론되지도 않았던 군대위안부 문제와는 완전히 별개다.
한·일 경제계는 그동안 정경분리 원칙을 지켜왔다. 일본 경제단체가 밝힌 입장은 이 원칙을 저버릴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극우의 길을 걷는 일본정부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인 성격을 갖는다. 주변국과의 갈등을 낳는 극우 사관이 일본 경제계까지 오염시키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침략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정부의 몰염치는 이미 도를 넘었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싸늘하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합리화에 매달리니 주변 국가는 일본 정부에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일본 경제단체는 “한·일 양국이 함께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와 경제계가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사죄하는 뜻은 없이 관계 발전만 말해서야 어떻게 공영의 길을 찾겠는가.
한·일의 미래를 기약하려면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먼저다. 우리 정부도 노력이 부족한 만큼 이 문제만큼은 양국이 협력해 풀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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