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현충시설 ‘유관순열사 기념관·생가’ 선정
우리고장 현충시설 ‘유관순열사 기념관·생가’ 선정
대전지방보훈청, 대전·세종·충남 2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
  • 고일용 기자
  • 승인 2014.02.0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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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방보훈청과 홍성보훈지청이 대전·세종·충남지역의 2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로 ‘유관순열사 기념관·생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유관순열사 기념관 전경.ⓒ 대전지방보훈청 제공
대전지방보훈청(청장 이명현)과 홍성보훈지청(지청장 이태용)이 대전·세종·충남지역의 2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로 ‘유관순열사 기념관·생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에 다니다 서울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4월 1일 4000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운동인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 일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7년 형을 언도받고 옥중에서 투쟁하다 1920년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유관순 열사 생가지는 봉화지와 함께 1972년 10월 사적 제230호로 지정됐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 만세운동 당시 일본관헌들이 가옥과 헛간을 불태워 유품 한 점 없이 전소되고 빈터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91년 12월 30일 복원했다.
생가 옆에는 박화성이 시를 짓고, 이철경이 글씨를 쓴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가 있다.
유관순 열사가 1920년 9월 28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이화학당 주선으로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으나 이후 이태원 공동묘지가 일제의 군용기지로 쓰이게 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하는 가운데 열사의 유적은 흔적도 없이 망실됐다.
이에 열사의 원한을 풀어 드리고 영혼을 위로해 편히 잠드실 초혼묘를 매봉산 중턱에 봉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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