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신드롬
‘겨울왕국’ 신드롬
디즈니 네오클래식의 위대한 귀환… 뮤지컬 넘버 중 최고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 ‘눈’ 시각적 모티브 삼아 관객 현혹
  • 뉴시스
  • 승인 2014.02.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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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서러운 시간이었다. 드림웍스가 ‘슈렉’ ‘쿵푸팬더’ 시리즈를 내놓으며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인정받고, 픽사가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월 E’ ‘업’ 등 애니메이션 걸작을 쏟아낼 때 디즈니는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언 킹’ 등 옛 영광을 추억하며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했다.
그랬던 디즈니가 돌아왔다. 정말이지 완벽한 승리의 복귀전이다. 디즈니가 이룩한 고전 애니메이션을 넘어 ‘뉴 클래식’을 창조하며 컴백했다. 그 이름 ‘겨울왕국’(감독 크리스 벅·제니퍼 리)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겨울왕국’은 지난 8일까지 관객 728만2870명이 봤다. 역대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중 최다관객 기록작인 ‘쿵푸팬더2’(506만2722명)를 넘어선 지 오래다. 역대 국내 개봉 외화 흥행성적 7위였던 ‘어벤저스’(707만4867명)도 제쳤다.
그러나 단순히 숫자로만 ‘겨울왕국’ 열풍을 설명할 수는 없다. ‘겨울왕국’이 영화관만 얼리고 있는 게(극중 ‘엘사’의 마법처럼) 아니라는 점은 음원차트를 보면 확인된다. 뮤지컬 애니메이션답게 ‘겨울왕국’의 OST가 차트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특히 ‘엘사’의 테마인 ‘렛잇고(Let It Go)’는 노래 좀 한다하는 가수들이 경쟁적으로 커버곡을 내놓을 정도로 인기다. 또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처럼 온갖 패러디가 등장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좋은 음악은 ‘겨울왕국’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다. ‘렛잇고’나 ‘두 유 원트 투 빌드 어 스노맨(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을 먼저 듣고 이 음악이 영화 어디에 쓰이는지 알고 싶어 극장을 찾는 관객이 있을 정도다.
‘겨울왕국’은 음악이 애니메이션 화면과 최적으로 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엘사’가 얼음성을 만드는 장면과 ‘렛잇고’의 하모니는 관객에게 짜릿함을 안기는 아름다운 신이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겨울왕국’의 OST는 디즈니 만의 화성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기본적으로 괜찮은 음악”이라며 “각 캐릭터와 스토리에 음악이 정확하게 결합하면서 지금과 같은 파괴력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단, “디즈니의 뮤지컬 넘버 중 역대 최고라는 찬사는 과한 것 같다.”는 판단이다.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는 ‘겨울왕국’ 현상을 가능케 한 또 다른 요소다. 이는 이 영화의 제목 그대로 ‘겨울’ 풍경을 담아내는 데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엘사’가 눈과 얼음을 활용한 마법을 부릴 때는 역동적이고, 눈에 묻힌 성과 마을을 비출 때는 서정적이다. 눈 결정 모양을 활용해 만든 ‘엘사’의 성과 성 안의 샹들리에부터 메달 장식까지, 눈을 시각적 모티브로 삼아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관객을 현혹한다.
명징한 이미지 제시는 20여년 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큰 성공을 거둘 때의 모습과 일치하는 측면도 있다. ‘인어공주’에서 묘사된 바다 속 풍경, ‘미녀와 야수’의 신나는 파티 장면, ‘라이언 킹’에서 볼 수 있었던 아프리카 초원의 모습은 관객을 영화에 더욱 빠져들게 했다. ‘겨울왕국’은 이런 흥행공식을 눈을 통해 재현해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겨울왕국’의 이미지는 환상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며 “눈과 얼음으로 세계를 디자인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짚었다. 또 “설경이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서 오는 신비로움도 관객이 이 영화를 좋게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봤다.
극중 ‘안나’는 이런 대사를 한다. “마법에는 눈이 어울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캐릭터와 이야기도 특기해야 한다. 특정 성격을 부여받은 인물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것이 극이라고 볼 때, 캐릭터와 이야기는 엄밀히 따지면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겨울왕국’이 기존의 평면적 이야기에서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엘사’는 여지껏 디즈니가 만든 주인공 중 가장 섹시한 캐릭터다. 단순히 짙은 눈화장과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옷을 입어서가 아니다. 봉인됐던 자신의 능력을 한껏 표출하며 “이제는 혼자 살겠다.”고 노래하는 장면(이때 나오는 노래가 ‘렛잇고’다)은 ‘엘사’의 섹시한 성격을 잘 드러낸다. 왕자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까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여주인공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캐릭터로 자리잡는다.
캐릭터가 독특하니 이야기는 기존의 틀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갈 의지가 있는 주인공이 왕자에게 의지해 살아간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죽음 일보직전의 ‘안나’를 살리는 것이 남자의 키스가 아니라 자매의 사랑이라는 설정은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이야기인 셈이다. ‘새로운 고전’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흔히 ‘디즈니 애니메이션’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가장 먼저 지운 것이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한창완 교수는 “디즈니에는 ‘뮬란’이나 ‘메리다’ 같은 여전사 캐릭터도 있었다.”면서도 “이런 캐릭터들은 상품화된 페미니즘의 도구로 쓰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겨울왕국’의 ‘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 한 명 없이 혼자서 삶의 비극을 극복해낸다. 이러 면에서 ‘겨울왕국’의 캐릭터가 새롭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건국대 영화과 송낙원 교수는 “‘겨울왕국’은 디즈니 특유의 선택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픽사의 세계관이 투입된 작품”이라며 “이런 변화가 ‘겨울왕국’ 성공의 밑바탕”이라고 풀이했다.
어린이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눈사람 ‘올라프’ 또한 기억해야할 캐릭터다. 귀여운 몽상가인 ‘올라프’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아이들을 웃기고, “친구를 위해서는 녹아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순수함으로 성인 관객의 마음마저 움직인다. ‘올라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조연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로 남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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