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양 칼럼] “열심히 살아도 왜 가난할까요”
[금기양 칼럼] “열심히 살아도 왜 가난할까요”
  • 금기양 부장
  • 승인 2014.10.06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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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40·50대 중년층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왜 지금도 가난할까요’ 필자가 아는 한 지인이 던진 말이다. 그는 ‘열심히 일하면 잘 살게 된다’는 믿음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베이비부머인 그는 내가 봐도 남들보다 열심히 일만 했다. 그 결과 평범한 50대인 그는 지독한 가난의 압박에 삶에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다가 올 60·70대를 생각하면 더욱 암담하고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연봉 4600만 원, 32평 아파트 한 채에다 중형차를 소유한 중소기업의 간부이다. 어찌보면 대전지역에서 그런대로 중산층이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영원한 ‘푸어(빈곤)세대’라고 규정했다. 무늬만 중산층이지 늘 빚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출금을 매달 갚아야 하고 미취업 딸의 용돈, 대학생 아들 학비, 갱년기 맞은 병고의 아내 병원비, 부모님 생활비 주고 나면 월급이 동이 난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직장은 있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워킹 푸어’(Working Poor, 근로빈곤층)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집은 있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늦게나마 집을 장만했다. 그러나 장기불황이 지속되면서 이제는 집값 상승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매달 은행에 쏟아붓는 이자 비용만큼 집값이 오르는 것도 아니어서 그의 생활은 더욱 곤궁해지고 마음고생이 크다고 했다.
집을 장만했으나 대출이자를 갚느라 실질소득이 줄어든 ‘하우스 푸어’가 됐다. 매달 번 봉급을 은행에 갖다 바치는 채무자, 즉 은행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사람들은 ‘빚만 없으면 살겠어’라고 말한다.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에 빚이 없으면 중산층이란 얘기다.
한 평생 열심히 일했고 IMF 등 온갖 풍상을 겪고나서 ‘실버 푸어’까지 예약된 셈이다. 그는 고단한 인생을 한탄했다.
더 큰 아픔은 ‘워킹 푸어’를 면치 못한 자신보다 가난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할 것 같은 예감을 두려워하고 있다. ‘부의 세습’이 된 세상에서 자식에게 빈곤을 대물림하는 아픔을 노년에 지켜봐야 하는 이중의 고통이 더 괴로울 것이라 말했다.
아들 둘을 두고 있는 그는 자식의 취업과 결혼도 큰 걱정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자식들이 결혼을 할 경우 또 대출을 받아야한다고 했다.
결혼 후 ‘허니문 푸어’ 아이를 낳으면 만만찮은 출산·육아 비용으로 손주는 ‘베이비 푸어’가 될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일제 식민지 현실을 그린 염상섭의 ‘삼대’보다 버거운 삶을 지탱하느라 ‘푸어 삼대’를 고뇌하고 있다.
32개 OECD국가 중 국민소득 2만4000달러 시대에 ‘풍요속의 빈곤’과 자본의 병폐인 양극화 사회로 치닫으며 절망의 사회가 이들의 삶을 흔들고 있다.
근간 국가도 개인도 신분 상승이 가능했던 대한민국 고속성장 신화를 이뤄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웃자람 성장의 댓가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중산층 붕괴와 양극화가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중산층이 가만히 앉아 빈민층이 돼버렸다. 세월이 지나면서 소득은 올랐지만 돈이 더 많게 나가는 요인이 됐다.
실제 중산층 적자가구 비중이 1990년 15.8%에서 2012년 23.3%로 늘어났다. 2012년 사회조사를 보면 평생 노력해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가구주 비율이 무려 58.7%에 달했다. 가구주 본인이 상층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은 고작 1.9%에 불과했다.
이런 인식은 새 정부 들어 더욱 농후해졌다. 열심히 일해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오를 가능성이 ‘낮다’는 비관적 응답은 2012년 보다 10%나 늘어났다.
새 가구주의 10%가량이 추가적으로 본인 세대에서의 신분 상승을 기대하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최근 한 조사에서도 국내 직장인 70%가 스스로 ‘워킹 푸어’라 밝힌 것도 요즘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어찌됐건 심리나 물질적으로도 국민 90% 이상은 ‘가난하다’고 여기고 있다. 일을 해도 가난하고 일을 안 하면 더 가난하다고 느낀다.
이같은 경제적 박탈감에다 정신적 고통을 안기는 이들이 있다.
다름 아닌 ‘정치가’들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하는 폼새를 보면 국민 90% 이상이 느끼는 ‘가난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지금처럼 ‘밥 먹어도 못 먹어도’ 가난하다면 그 원인은 경기침체가 아니라 ‘정치와 정책의 실패’에 있다고 하겠다.
이제 경제대국을 운운하기 보다 ‘가난’을 성찰해야 할 때다. 정치 현장에서 빈곤과 관련한 논의와 민생법안을 외면한 의원들은 국민의 대표가 아니다.
우리사회가 어떻게 빈곤을 극복해야 하는지, 빈곤계층을 지원하는 지금의 정책들은 어떠한 문제와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지 돌아볼 일이다.
‘세월호 정국’을 탓하겠지만 정치인들은 ‘열심히 일해도 왜 가난한가’라고 묻는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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