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에 노조설립 허용돼야
[사설]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에 노조설립 허용돼야
  • 충남일보
  • 승인 2015.06.2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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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따라서 불법체류 외국인도 노동 3권이 인정되고 노조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서울, 경기, 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노조 설립을 불허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지방노동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2005년 6월 처음 소송이 제기된 지 10년 만에 대법원에 상고된 지 8년여 만에 내려진 결론이다. 재판부는 “근로를 제공하고 대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노조 결성과 가입이 금지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노조결성이 허용된다고 해서 취업 자격이 주어지거나 국내 체류가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시작은 수도권 지역 외국인 근로자 91명이 10년 전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가 반려되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불법체류 근로자들에게는 노동조합 가입이 허용되지 않는다.”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2심은 “불법체류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노조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이란 사용자와 근로자의 1대 1 임금·근로조건 협상에선 교섭력이 사용자 쪽에 일방적으로 기울게 되므로 양쪽 힘의 균형을 맞춘다는 취지에서 근로자의 단결과 단체 행동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고용 시장에서 불법 체류 근로자의 지위는 가장 취약하다. 언제라도 추방당할 위험이 있어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차별과 임금 체불 등의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법원 판결은 우리 사회의 밑바닥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국인 불법 체류 근로자들의 기본 인권을 일정 수준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여서 크게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불법 체류 근로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임금을 올려달라거나 체류를 합법화해 달라는 등의 단체 행동을 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때문에 강제 출국 대상인 불법 체류자들이 현실적으로 무리한 노조 활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내엔 외국인 합법 취업자 85만, 불법 체류자가 20만 명 정도 있다. 이들이 우리 경제의 한 기둥을 지탱해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 취업 외국인 근로자의 규모를 조절해가며 제도를 운용하면 외국인 근로자의 기본권을 인정해주더라도 우리 사회가 어지간한 부작용은 감당할 수 있다.
불법 체류자라도 납세 의무를 다하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으면 체류 권한을 좀 더 개방적으로 인정해줄 필요도 있다. 이번 판결은 국제노동기구(ILO)까지 나서 조속 처리를 촉구할 정도로 국제적 관심사가 됐던 만큼 우리 국격에 상응한 판결이 오히려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국내 산업현장의 가장 힘든 분야에서 땀 흘려 일하는 100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열악한 근로조건을 정상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런데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제약이 있는 이상 현실적으론 실효성 없는 ‘교과서 판결’이라는 냉소도 깔려 있다는 반응도 있어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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