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각서쓰고 재산 빼앗는 불효
[월요논단] 각서쓰고 재산 빼앗는 불효
  • 임명섭 논설고문
  • 승인 2016.01.03 1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효(孝)를 으뜸으로 따지는 우리 나라는 특히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임금으로 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과거 시험에서도 사람들의 윤리생활이 근간으로 강조돼 왔다. 효녀 심청전이나 그밖에 수많은 효에 대한 전설이 내려 오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효를 행한 것 중에는 구약 성경에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이를 거역하지 않고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효를 실천했으며 그 결과 자신의 목숨도 지킬 수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륜의 기본이다.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중국도 효를 중요시 해 각종 문학작품에 효를 강조한 내용이 많다. 효(孝)는 사람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간이므로 인륜 회복을 위해 효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다각적인 면에서 실현하고 있다.
특히 조선 시대 가장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로 여겼다. 심청전은 대표적인 효(孝)로 전해오고 있다. 황해도 도화동 심학규라는 장님은 늦은 나이에 청이란 딸을 얻었으나 산후 7일 만에 아내를 잃고 온갖 고생으로 딸을 키웠다.
청은 자라면서 미모도 빼어나고 효성도 지극해 장님인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공경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심 봉사는 저녁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청이를 찾아 집을 나섰다가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다.
이때 자신을 구해 준 몽운사 화주승으로부터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수 있게 할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심 봉사는 생각 없이 덜컷 시주를 약속을 했다.그 후 이같은 사실을 안 청이는 용왕신에게 제물로 바칠 처녀를 사러 다니는 뱃사람들에게 공양미 삼백 석을 받고 자신의 몸을 팔았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청이는 그 지극한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키고 그로 인해 환생하여 황후가 된다. 황후가 된 청이는 결국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심 봉사도 눈을 뜨게 해 효의 전설로 유명하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영국 역사학자 토인비도씨가 최근 한국을 방문 후 귀국하는 자리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 제도는 한국이라”며 “한국 문화는 바로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는 효(孝) 사상이여 영국 사람에게도 한국의 효 사상을 심어 주고 싶다” 며 부러워했다.
그런 우리의 효 사상이 안타깝게도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처럼 효 사상이 발전하고 아름답게 간직해야 될 정신이 현실이 안타깝게도 그렇치 못해 씁쓸하다. 얼마 전 대법원이 부모를 잘 모신다는 조건으로 효도 각서를 쓰고 부동산을 물려 받은 아들이 이를 지키지 않자 재산을 부모에게 돌려 주라는 판결을 내려 경종을 울렸다.
아버지 A씨는 아들로 부터 지난 2003년 12월, ‘부모를 충실히 부양’하겠다는 효도 각서를 받고 서울 종로구 한옥 2층 주택을 증여했다. 증여받은 주택에는 아들 식구와 동거했으나 약속대로 부양을 받지 못했다.
참다 못한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효도 각서에 따라 원상회복의무를 이행하라고 아들을 상대로 재판을 걸었다.아들은 함께 살면서도 허리디스크 등으로 몸이 편찮은 어머니의 간병을 따로 사는 누나와 가사도우미에게 맡겼고 부모와 식사도 함께 하지 않는 등 집안일을 외면했다.
심지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입원을 권유하기도 했다. 또 “부모가 집을 따로 마련해 나가게 해 달라”고 하자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아파트가 왜 필요하냐”고 막말까지 했다느 것이다.
재판부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는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재산을 돌려받겠다’는 내용을 문서로 남긴다면 이번 처럼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배은망덕한 ‘먹튀 불효자’에게 재산을 토해내는 징벌을 재판부가 시원하게 내렸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자식 효도를 돈으로 받을 수 있게 됐는지 씁쓸한 세상이 됐다.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절대 상속해줘서는 안 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고 있는 이유다.
독일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민법에 배은망덕하거나 학대 및 모욕을 저지르면 증여를 철회할 수 있게 돼 있다. 우리도 못할 이유가 없다. 불효자방지법이나 세금감면제도의 마련을 위해 현재 국회에 부양의무를 저버린 자녀에게 준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다.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진다. 부모와 자식 간에 효도 각서를 쓰고 지키지 않아 소송을 벌여야 하는 가족 붕괴의 시대상이 부끄럽기만 하다. 청이와 같은 효심이 나오지는 못할 망정, 부모 재산을 강제로 빼앗고 부모를 내팽개치는 패륜적 범죄가 범람하는 것을 볼 때 슬퍼질 뿐이다.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다. 부모와 자식을 원수처럼 만들어 놓는 소송전은 결코 강 건너 불 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