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중 칼럼] 甲寺에서 맞는 새해 아침
[김강중 칼럼] 甲寺에서 맞는 새해 아침
  • 김강중 선임기자
  • 승인 2016.01.05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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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속절없이 보내고 병신년 새해를 맞았다.
돌아보는 쉼과 새해를 정갈하게 맞을 양으로 산사를 찾기로 했다.
그래서 필자는 고향 친구와 계룡산 ‘갑사 용솟음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다.
을미년 마지막 날 오후 4시 30분에 갑사에 입소해서 다음날 퇴소하는 1박 2일 일정을 예약했다.
갑사는 대전에서 40분 거리였다. 친구가 오후 6시에 일과를 마치면서 저녁 공양시간이 지난 7시쯤 도착했다.
진해당에 도착하니 108염주 만들기가 끝날 즈음이었다. 템플에 참가한 20여 명의 법우들이 반갑게 맞아 줬다.
전날 템플운영진에게 다소 늦을 것이라 양해를 구했다. 그래도 진지한 분위기를 깨뜨렸다싶어 무안했다.
나를 찾기 위한 갑사템플의 참여는 이랬다. 병신년을 맞는 감회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한 달 내내 송년모임으로 심신이 지쳤다. 게다가 사람들과의 부딪힘에서 오는 공허함도 한 몫 했다. 멀미나는 세상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음이 솔직한 이유다. 이런 복잡한 상념들은 다독이려는 심산(心算)이었으리라.
좀 늦게 합류한 우리는 진해당에서 법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뒤 공양간으로 이동, 호박죽 간식을 나눴다.
공양간에 붙여 논 글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묵언은 안과 밖을 하나가 되게 한다.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란 글귀였다.
‘나이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고’라는 시쳇말 보다 의미심장했다. 침묵한다고 할 말 없는 것 아니고 대답 않는 것이 모름이 아니지만 이 말은 새로웠다.
말과 글에 대해 매번 후회하고 반성하지만 침묵만도 못하기 때문에 묵언의 지침은 큰 공감으로 다가왔다.
친구와의 오랜 우정과 추억을 되새기는 시·공간의 호젓함도 좋았다. 우리는 갑사에 오기를 잘했다는 눈길을 나눴다.
나이가 들면서 세월과 삶의 무게는 해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선뜻 동행해 준 친구도 ‘계란 두 판’을 맞은 탓인지 그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이런 소회가 교차하는 가운데 염주·연등 만들기, 촛불 명상, 자신에게 편지쓰기와 소원등(燈) 달기로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갑사를 찾은 것은 ‘느림과 비움과 나눔’의 지혜를 느끼고자함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템플을 주관하는 해조스님께서 연등 만들기를 40분으로 제한하자 이런 생각은 어긋났다. 게다가 예쁜 등에 대해 시상하겠다는 스님의 말씀은 경쟁을 부추겼다. 옆자리를 훔쳐보며 ‘더 빨리 더 예쁘게’란 탐욕의 근성이 이내 되살아났다.
이어진 해조스님과의 차담(茶啖)은 템플스테이의 백미였다.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였다.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해조스님의 행복론은 명료했다. 사람들은 산과 바다를 늘 찾지만 싫증나지 않고 아름다운 까닭을 말씀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없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누구나 기대가 크고 댓가를 바라면 서운하게 마련이다. 그 실망과 미움은 갈등을 키우고 사람과의 관계를 망치게 된다는 게 해조스님의 요지였다.
차담을 마친 뒤 장작불로 한기를 이겨내며 자정의 타종식을 기다렸다. 노스님과의 범루에서의 타종은 색다른 체험이고 명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승려생활 52년의 노스님은 타종을 기다리는 막간을 틈타 ‘신은 없다’는 설법을 들려주었다. 옆에서 카운트다운을 세는 해조스님의 초조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딴전을 부리며 들려주는 해박한 설법은 신선했다. 자정을 알리자 타종은 시작됐고 장엄한 종소리는 심신을 달래 주었다. 타종을 하면서 올해는 숱한 미혹과 미몽에서 깨닫는 해가 되기를 소망했다. 법우들과 돌아가면서 33번의 타종식을 마쳤다. 모두들 새벽 4시 20분 대웅전 새벽예불을 드리기로 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친구와 필자는 108염주 만들기 불참의 불경(不敬)으로 대웅전에서 108배를 드린 뒤 눈을 붙이기로 했다.
절을 올리며 108배를 잊을 것을 염려해 54배로 나눠 기억하기로 했다. 108배를 올리면서 횟수가 거듭할수록 숨은 차고 버거웠다.
본디 온갖 번뇌를 잊기 위해 드리는 108배라 했던가. 불교에 과문한 터여서 참선과 도(道)가 무엇인지 거대담론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곳에 왜 왔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또 새해가 시작되면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을 가늠했다.
또 어줍잖은 글을 쓴답시고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정신적 횡포는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그간 마신 술의 업보로 생긴 술배를 끌어안고 108배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겨우 끝내니 땀이 흘렀으나 허리는 곧곧했고 마음은 고요했다.
작은 성취감으로 쪽잠을 잔 뒤 4시 20분에 대웅전으로 나갔다. 이미 새벽예불이 시작됐다. 방해가 될까 싶어 친구와 대웅전 앞에서 포행을 대신했다.
총총 떠 있는 별빛과 구름사이로 비껴 흐르는 반달의 정취는 그윽했다. 우리는 대웅전 앞마당을 돌면서 어린 시절 얘기며 노스님의 허허실실과 관록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아침 공양을 마치 뒤 산행에 나섰다. 용문폭포를 지나 천진보탑을 향했다. 법우들은 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모두가 하나 된 마음이 됐다. 누군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귤과 초코바를 건네며 정을 나눴다.
인연의 이치를 공유하고 나누는 삶을 터득한 모습들이다. 마음결이 곱고 향기가 넘쳐났다. 천진보탑에서 합장배례를 마치니 회색빛 하늘을 헤치고 맑은 해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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