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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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호가스의 ‘유행하는 결혼’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3.07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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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여신을 훔쳐본 죄로 기원전 350년경에 텁에 그려진 악타이온. 머리에는 사슴처럼 뿔이 돋고 자신이 기르던 개에 물려 죽는 벌을 당하고 있다.
▲윌리엄 호가스의 결혼풍자와 악타이온의 알레고리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1697-1764)가 그린 ‘유행하는 결혼(Marriage a la mode : an Humorous Tale in Six Cantos)’에서는 배우자의 불성실성을 전달하는 상징으로 악타이온이 동원되었다.
‘유행하는 결혼’은 당시 돈을 보고 뛰어드는 상류층의 결혼풍토, 부정과 타락을 풍자한 것으로 6편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소개하는 그림은 1편과 4편의 것이다.
그림의 배경은 돈 많은 상인과 파산한 백작 스콴더필드 사이에 자녀들의 결혼계약이 진행되고 백작은 그림에서 보듯이 족보를 들춰내며 상류층을 과시하고 있다.
반면 검소한 차림의 상인은 백작의 얘기를 들으면서 변호사를 통해 결혼 조건을 딸에게 설명해 주고 있다.
여인의 옆에는 남편이 될 백작의 아들이 창문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백작 아들의 발 밑에는 두 마리의 개를 등장시켜 곧 다정스런 결혼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으나, 벽에 걸려있는 그림 가운데 메두사의 머리를 등장시킴으로서 머지 않은 장래에 결혼의 파국을 예고하고 있다.
상인의 딸은 백작 아들과 결혼하면서 상류층의 취미인 예술품 수집, 오페라 관람, 사치에 물들면서 연인 실버통과 연애하게 되고 배우자의 부정을 알게된 남편이 실버통과 결투를 요청하여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다.
제4편의 그림처럼 연인 실버통이 백작부인에게 찾아와 무도회에 초청을 알리고 있는데, 아래의 흑인소년이 들고 있는 악타이온 상을 그림에 넣음으로써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과 부정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호가스는 결혼뿐만 아니라 다른 그림에서도 악타이온 이외에 흑인 소년을 등장시켜 배우자의 부정과 에로틱한 요소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활용하였다.

▲악타이온을 위한 변명

이제 악타이온에 관한 신화를 마감하면서 가엽게 희생된 그를 변명해야 겠다.
아르테미스는 육체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처녀, 소녀티가 나는 처녀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았고, 누구와도 혈연관계가 없는 자연과 야성과 사냥의 여신이다.
아프로는 거품을 뜻하는 말이며, 아무도 살지 않는 델로스 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제우스의 딸로 족보가 올라가 있긴 하지만 아마 거품의 바다를 건너 그리스 본토에 상륙한 여인이다.
그녀는 사람보다도 동물과 친숙하며 무화과나무 열매가 그녀의 주식이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며,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이 그녀의 생활공간이다.
거기에서 그녀의 매력이 있고, 힘이 나온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자들에 대한 다이아몬드와 같은 단호함, 숙녀의 나이에도 아직 이르지 못한 앳된 사랑스러움, 단순하고 예측 불가능한 야성이 그녀의 캐릭터다.
시인이며 문학비평가였던 미국의 윌리엄 베넷(William Rose Benett, 1886-1950)은 악타이온을 변명하고 옹호하는 시를 썼다.
윌리엄 베넷은 아르테미스 여신의 캐릭터를 ‘참을성 없는 미’(beauty beyond bear ing)로 표현했고, 이로 인하여 악타이온이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죽었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리고 과거 전설의 고통을 잊은 채 다시 아르테미스를 찾아가 자신을 변명하며, 아르테미스에게 ‘참을성 있는 아름다움’의 여신으로 태어날 것을 권고하는 악타이온을 그렸다.

나는 버드나무에 이끌리어 왔네. 나는 연못에 이끌리어 왔네.
엷은 햇살에 이끌리어 왔네. 그대, 양털처럼 하얗게 빛나네.
그대, 그림자의 잔물결에 설화석고처럼 하얗게 타오르네.
파멸의 사냥개가 꿈결처럼 으르렁거리네.

내가 숭배하는 가벼운 꽃병, 오, 거만한 목소리,
그대가 반한 보검 같은 아름다움!

돌아오지 않는 영광 . 그대 눈은 그렇게 강렬하게,
적을 향해 타오르네.

나는 전설을 망각했네. 나는 고통을 잊었네.
은빛의 화살 끝은 변함없네.
그리고 순간의 대경실색에, 참을성 없는 아름다움.
그대의 시선은…모든 여신에 불안을 펄럭이게 하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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