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복의 孝칼럼] 지식 교육과 지혜 교육
[최기복의 孝칼럼] 지식 교육과 지혜 교육
  • 최기복 충청창의 인성교육원 이사장
  • 승인 2016.05.1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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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란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가? 지혜를 쌓아 올리기 위하여 하는 것인가?
지식과 지혜의 한계는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
필자는 솔로몬의 지혜를 예로 들고자 한다.
솔로몬 왕 앞에 나타난 어머니임를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살아 있는 아들을 양분하여 나누어 가져가라고 한다.
이때 진짜 어머니는 아들을 죽일 수 없어 자기는 어머니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여기에서 살아 있는 아들을 1/2로 나누어 가질 것을 명한 것이 지식이라면 진짜 어머니를 찾아 주는 것은 지혜가 아닐까 한다.
학교 교육은 지식 교육이냐? 지혜 교육이냐? 묻기에 앞서 학교를 다니는 이유를 묻고 싶다.
필자가 중학생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질문한 결과 그들의 대답은 기상천외였다.
엄마가 가라고 해서, 친구와 놀려고, 점심 얻어 먹으려고, 갈데가 없어서. 5명중 1명은 공부 하려고였다. 이들은 지혜가 무엇인지 모른다. 2등하는 학생은 1등 학생이 전학 가거나 없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아닌지? 매사가 나보다 뛰어난 학생이 싫은 것이나 아닌지를 묻고 싶었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왜 지식이 필요한가? 경험은 지혜를 낳는다고 한다. 과보호의 그늘속에서 아픔을 겪어 보지 못하도록 사력을 다하는 부모의 그릇된 자식사랑 앞에 지혜가 살아 움직일수 있을까? 열린 사고를 통해 혜안이 되고 분별 능력이 객관화 될 수 있을까?
아직도 일류대에 가야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벌수 있거나 돈을 벌수 있는 자리가 담보된다는 사고를 공유하는 부모와 교사, 사회분위기가 먼저 바뀌어야 함에도 방법을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부(富)를 축적하고 축적한 부가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경우 필패가 답이었음은 역사가 이를 입증한다. 부가 선망의 대상일수는 있어도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다.
학교에서의 지혜 교육은 선행 교육이어야 하고 선행 교육은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약자를 돌봄에 당당할 줄 아는 교육이어야 한다. 컴퓨터를 열면 쏟아져 나오는 지식들과 학교 교육의 보충교육이랍시고 방과후에 보내는 학원 교육에서 자기희생을 배우고 약자를 돌보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가르치는가?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하필이면 이날 홀로 사는 아버지를 살해한 남매의 패륜기사가 마음을 어둡게 한다. 아버지에게 있는 유일한 재산 집을 빼앗으려고 저지른 행위다. 낳고 길러서 성가시킨 은혜를 얼굴을 알아 볼 수 없도록 둔기로 때려 살해를 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남은 여생은 존속 살해라는 죄명으로 평생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은 아버지는 자식교육을 잘못해 자식으로부터 보복을 받은 것이다. 지식 교육은 잘못되면 살인 교육이 될 수도 있고 지혜교육은 활인(活人)교육이 될 수도 있다.
가정 교육도 학교 교육도 이대로 가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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