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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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 영주부인 고다이버 신화 (1)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3.08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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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 수놓은 엽서형태로 만들어진 레디 고다이버. 중세기 영국의 백작 부인 고다이버는 남성의 트릭에 희생되지 않는 실천력 강한 여성을 상징한다.
영국의 세금은 과중하기로 유명하다.
중세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제활동을 하면서 많은 수입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세금과 관련하여 중세기의 영국에서 가렴주구하는 성주로 인해 시민들이 고통을 당하자 알몸으로 성내를 돌아 성주인 남편으로부터 세금감면을 이끌어낸 이야기가 고다이버와 이를 몰래 엿본 자가 눈에 벼락을 맞아 죽은 피핑탐(peeping tom)이다.
고다이버는 1100년대에 영국에서 살았던 백작 부인이다. 고다이버가 사망한 지 1세기 동안은 그녀가 정숙한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1057년 남편이 사망했을 당시의 베네딕트 수도원 기록에 의하면 “그녀와 남편은 신앙심 깊고 종교단체에 자선을 베풀었다”는 정도로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부부가 사망한 후 약100년 뒤에 에로틱한 요소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다음에 인용한 구절은 1250년경에 집필된 ‘M 파리’의 연대기에 등장하는 고다이버 신화는 이렇게 요약된다.

경건한 백작부인은 성내의 주민들이 억압적이고 부끄러운 노예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지길 희망하며 남편 리어프릭 백작에게 억압적 조치의 중단을 호소하였다. … 그녀는 남편이 허락할 때까지 몇 번이고 간청하였다.
이에 지친 백작은 아내의 요구를 마지못해 수용하였다.
“당신이 알몸으로 말 위에 올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시내의 다운타운 한바퀴를 돌아온다면 당신이 어떤 요구를 하든 보상받을 것이오”
그로부터 사랑스런 신의 여인, 백작부인 고다이버는 주민들과 약속한 날에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말 위에 올랐다.
머리 위로 따 올린 긴 머리를 아래로 풀어 내린 채 그녀의 하얗게 빛나는 다리를 제외한 온 몸이 긴 머리로 가려졌다.
그녀가 그렇게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리어프릭 백작은 코번트리의 시민들을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도시의 규칙을 제정하고 자신의 인장이 표시된 스탬프로 사인하게 되었다(매튜 파리의 ‘Chronica Majora’).

매튜 파리의 연대기에 의하면 백작부인이 정숙한 여인에서 신화적인 여인으로 변형된 것을 볼 수 있다.
영주가 징수하는 무거운 세금을 내는 시민들에 대한 연민, 남편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은 끝에 동의를 얻어내는 끈기, 누드로 말에 올라타는 용기, 누구도 자신의 알몸을 보지 못하도록 조치한 그녀의 치밀함과 수완은 신화적 소재가 되기에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잉글랜드에서 세금은 정복시대부터 국가와 시민간의 갈등이 충돌하는 핵심이었다.
가축에 대한 상속세, 통행세 또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 징수하는 일종의 사용요금 같은 성격이 세금으로 부과되었다.
고다이버는 영리하고 고집이 센 여자이기도하다.
남편의 잔인성에 희생당하는 여인이 아니라 남편을 움직이고 기지를 발휘하는 주도면밀한 여인으로 재해석될 수도 있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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