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 사회현상 개선할 근시안적 해법 버려야 한다
[목요논단] 사회현상 개선할 근시안적 해법 버려야 한다
  • 박창원 교수 충남도립대 인테리어패션디자인과
  • 승인 2016.08.0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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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채식주의자’ 번역가는 한국의 노벨문학상 집착에 당황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의 염원인 노벨상 수상의 열망이 왜 그녀를 당황하게 했을까? 가시적인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반문해본다. 그녀는 상은 그저 상일뿐이고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고 독자가 읽고 좋아하면 그것만으로도 작가에겐 충분한 보상이라고 말했다.
과연 수상하는 것이 창작의 동기가 되는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에게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올림픽과 같이 상을 놓고 경쟁하는 단편적 경기라면 이기기 위한 경기 운영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나 작품 활동과 같이 정신적이며 영혼을 다루는 작업이 상에 집중할 때에는 오히려 창작품을 망치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필즈상과 노벨상 수상자들인 해외 석학들이 우리나라의 과학 생태계의 변화에 충고를 한 적이 있다. 그들은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의 연구 경쟁력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그들의 연구에 대해 ‘세계 대학을 선도하는 일류 명문대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평가했다. 평가단은 교수들이 테뉴어(tenure·정년 보장)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시간과 공이 많이 드는 모험적인 연구를 피하고, 대신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실적 쌓기에 치중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평가단은 또 ‘교수들이 자기 논문이 많이 인용되게 하려고 이미 많은 이들이 연구하는 분야에 뛰어드는 따라 하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교육행정의 과정에서 연구의 창조적이며 실질적인 가치보다는 수치에 집착하는 새태에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보인다. 젊은 교수들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모험을 하지 않고 실적을 위해 ‘남이 해놓은 분야’에 몰려 논문의 편수만 채워놓으면 된다. 따라서 세계를 선도하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 의욕은 꺾이게 되기 마련이다. 결국 새로운 분야에 대한 선도적 연구보다는 아류의 연구에 머물러 선구자 아닌 추종자들만을 양산해내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교육행정의 입장에서 보면 논문의 수가 몇 편인가로 밖에 평가할 근거가 없다. 또한 진정 창조적인 연구를 만들어내기 위한 객관적인 평가가 유보된 상태에서, 교수들을 연구의 질보다 양을 생각하게 된다.
축구의 손흥민 선수를 키우기 위해 그의 코치 겸 아버지는 어린 시절 그를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다. 그 대신 기초훈련에 그의 스케줄을 집중시켰다. 기본을 중요시하는 그런 태도가 손흥민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울 수 있었다. 일정 궤도에 오른 야구 투수들의 경우,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항상 부상에 시달리는 것을 알 수 있다. 류현진 투수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다음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박찬호 선수 역시 최고의 투수로 이적한 시점에서 부상을 당해 일명 ‘먹튀’ 논란에 휩싸였었다. 기본에 충실하기보단 어린 시절부터 선수생활을 하며 지나치게 혹사당한 결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점에 부상으로 낙마하게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우리의 경제가 급성장했지만 우리는 항상 위기라는 말이 신문지상에 항상 나오고 있다. 북한이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것처럼 대통령은 말한다. 또한 국가 경제가 총체적 난국이라고 말한다. 그 동안 이를 토대로 경제 파이를 늘리는 일에 정부가 앞장을 섰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산층이 몰락하는 시점까지 정부는 파이를 나누지 않는다. 그러고는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 이제 허리를 너무 졸라매다보니 내부 장기인 위장과 대장이 제 기능을 못하고 몸에 활력이 사라졌다. 양치기 소년을 마을사람들이 믿지 못했듯이, 국민은 더 이상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다.
우리를 급속히 성장시켰던 ‘빨리빨리’의 태도, 그리고 외형적인 것을 중시하는 문화가 지금 우리의 경제 발전과 사회현상에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운동선수들과 같이 초기부터 너무나 혹사당했던 우리 사회가, 국민이 최고 선진국으로 전진하는 지금 시점에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새로운 동력을 위해 치료를 해야 하지만 그 치료의 주체인 행정과 정치는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 해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 사회가 외형적이고 단편적인 해결책의 제시에만 몰두해온 것. 이제 천천히 문제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고 조금 늦더라도 근시안적인 해법을 버려야 한다. 우리 사회에 거창하게 붕대를 감은 깁스는 필요 없다. 진정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오랫동안 방치해 커져버린 사회 내의 종양을 뿌리 뽑는 수술이다. 또,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내를 가지고 지속해야 할 재활치료다. 부상당한 사회적 가치를 회복할 근원적인 수술 방법을 찾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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