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으로 본 세상] 머무름의 이치와 절대적 자유
[주역(周易)으로 본 세상] 머무름의 이치와 절대적 자유
  • 김재홍 충남대학교 교수
  • 승인 2016.08.30 1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가.
인생을 살면서 본분을 살펴 머물 곳에 머문다면 욕됨을 피하고 살아갈 수 있다.
과거 선비들이 공부를 하는 목적 중 하나가 ‘머물러야 할 때 곧 머물고, 움직여야 할 때 곧 움직임을 알기 위함’이라고 한다. 명심보감에서는 ‘머물음을 알고 항시 머물면 종신토록 욕됨이 없다’고 했다.
또 대학에서 ‘머무를 곳을 안 뒤에야 정함이 있고, 정해진 뒤에야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고 갈파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머물러야 할 곳과 머물지 말아야 할 곳을 이 처럼 구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사는 모두 움직임과 멈춤으로 작용하고 길흉화복 결과로 나타난다.
주역에서 머무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괘(卦)가 중산간괘(重山艮卦)이다. 인간사는 모두 움직임과 멈춤 두 가지로 구분된다.
인간 만사는 이 두 가지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괘에서는 ‘그 등에서 머물면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에 가도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등을 볼 수가 없다. 잡된 생각을 보지 않아서 물욕에 이끌리지 않아서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눈으로 보지 못하고, 느낌이 없다는 것은 사물의 유혹을 등지고 있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물욕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니 이것이 ‘무망(无妄)의 경지’라는 것이다. 
자기의 본분에 맞게 행하며 알맞게 머물고 있어야 한다. 간괘에서는 ‘산을 겹친 것이 간艮이니, 군자는 이로써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하나니라’고 했다.
논어 ‘헌문’편에서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도모하지 않는다’고 했다. 군자의 마음가짐의 계율이다. 본분의 자리에서 함부로 이탈하면 안 된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은 마음의 움직임이다. 자기가 머물고 있는 그 위치에서 본분을 지키며 벗어나지 않고 올바름에 머물러야 한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면 흉(凶)하다. 간괘에서는 ‘그 발꿈치에 머무름이라, 허물이 없으니 영원히 올바르면 이롭다’고 했다. 사람의 발이란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맨 먼저 움직인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일의 끝을 알고 시작도 하기 전에 멈춤어서 올바름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가야할 곳은 가고, 정당한 일이 아니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타의에 의해서 움직이지 말라. 간괘에서는 ‘그 종아리에 머무는 것이니, 구원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 그 마음이 불쾌하다’고 하였다. 장딴지에서 멈추고 있다는 것이다. 장딴지는 자발적(독립적)으로 움직이지는 못한다. 허리나 발이 움직여야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장딴지이다. 즉 타의에 의해서 움직인다. 타의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그 마음이 유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움직여서 흉하다는 것이다. 
멈추지 말아야 할 곳에 멈추면 등살이 찢어져 흉하다.
간괘에서는 ‘그 허리에 머무는 것이라 그 등뼈를 쪼개는 것 같으니, 위태로워서 마음을 태운다’고 한다. 허리에서 멈추고 있다는 것은 멈추지 말아야 할 곳에 멈춘 것을 의미한다. 그 허리에 머무는 것이라 그 등뼈를 쪼개는 것과 같은 고통을 당하니 위태롭고 마음을 태운다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구조상 상체와 하체가 연결되어 있는 위치가 허리부분이다. 달려가다가 갑자기 허리에서 멈춤이니 등살이 찢어져 위태롭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허리는 상·하체의 연결 부위로써 멈춤이 가장 늦고 신체상의 고통이 가장 심하다. 그러므로 멈추지 말아야 할 곳에 멈춤으로써 마음을 태우고 흉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과 몸이 함께 멈추니 허물이 없다.
간괘에서는 ‘그 몸에 머무름이니, 허물이 없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멈추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형이하’의 몸과 ‘형이상’의 마음을 말한다. 몸과 마음의 멈춤이란 그 일을 통째로 멈춘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멈추어야 성숙한 멈춤의 도(道)를 실행할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
몸과 마음 일부만의 멈춤이 아니라 근원을 찾아 전부를 멈추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육신과 마음에서 자신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의 말씀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간다.
간괘에서는 ‘그 뺨에 머무름이니, 말에 질서가 있다. 뉘우침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 뺨에 멈춘다는 것은 뺨이란 말을 하는 입과 관련된 기관이다. 이것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성인의 말씀에 따라 순응하며 사람의 언행에 대한 머무름의 이치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므로 뺨에서 멈추면 말에 순서와 질서가 생겨 후회함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곧 성인의 말씀을 근원으로 하여 정도를 실천하라는 의미로 보인다. 
후덕함으로 멈추고 나아감에 경계가 없다. 간괘에서는 ‘돈독하게 머무름이니 길할 것이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멈춤의 도를 깨달아 마침내 그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멈춤과 나아감에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쳐도 진행되고, 나아가도 멈추어 있는 것이 바로 돈독하게 머무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본분에 충실하고 욕심과 사악함을 억제하고, 지어지선(止於至善)에 머물라고 말한다. 공자는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慾不踰矩)’라 했다. 이 말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더라도 절대 법도를 넘지 말라’는 뜻이다. 즉 나이 70이 되면 하늘의 뜻이 내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는 의미이다. 망령됨이 없는 무망(无妄)의 경지를 말하고 있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