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 日 時 論]원칙과 신의 사이
[忠 日 時 論]원칙과 신의 사이
  • 강재규 부국장
  • 승인 2008.01.3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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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정치에 어지간히 무관심한 사람일지라도 작금에 돌아가는 한나라당의 상황을 보면 얼마간의 흥미를 느낄 법하다. 당자들이야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겠지만, 일단 관전자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압승을 하고도, 남은 빅 이벤트에서 삐끗했다가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결과는 ‘원칙과 신의’ 사이의 묘수풀이에 달렸다.
최근 한나라당이 ‘비리 연루자 공천 금지’를 명문화한 당규를 둘러싸고 격랑에 휘말린 배경의 핵심은 박근혜 전 대표 측의 좌장인 김무성 최고위원의 공천 여부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명박 당선인 측의 계산된 정치보복”이라며 집단 탈당설까지 흘렸으나 이 당선인 측은 “비리 연루자를 공천하면 총선을 망친다”며 맞섰던 것이다. 해당 당규 ‘3조2항’은 한나라당이 지난해 4월 재·보선 참패 후 대선 승리를 위한 ‘도덕성 회복’을 명분으로 9월에 개정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 치 앞을 못 내다본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그런 규정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 적용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며 “국민도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이 측을 압박했다.
당사자인 김 최고위원은 “준비된 정치보복”이라며 탈당을 시사했고 박 전 대표 측 의원 35명은 ‘행동 통일’을 다짐했다. 여기서 김 최고위원은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가 회동한 다음 날인 24일 내가 강재섭 대표, 이방호 사무총장과 함께 오찬 회동 했을 때 나를 포함해서 친박근혜 인사들이 공천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대장부 합의를 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 같은 ‘대장부 합의’ 곧 신의를 이 당선인 측이 어겼다는 것.
박측에서는 비교적 온건파격인 김학원 최고위원도 “(특정인의) 공천을 불허하고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양측간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선거법 위반도 문제 삼자”는 주장도 나온다. 선거법 위반으로 1998년 의원직을 잃었던 이 당선인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물귀신 작전인 셈이다. 죄의 경중을 불문하고 벌금형이나 사면 복권된 경우까지 공천을 금지하는 것은 과잉 징벌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 당선인 측은 ‘이명박-박근혜 간 합의 위반’이라는 박 전 대표 측의 주장에 대해 당규를 위반하면서까지 비리 연루자를 공천하자는 합의는 아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진행되자 당 중진들이 다급해졌다. 자칫 파국으로 치닫는게 아니냐는 시각에서다. 그래서 나온 게 정치 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양측이 타협하도록 해야 한다”며 중재에 나설 뜻을 비쳤다. 김형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과 전재희 최고위원도 정치적 해결을 강조했다.
어떻게든 파국만은 막아야 한다는 당 중진들의 중재 노력으로 공심위는 당초 일정을 앞당겨 31일 긴급 소집됐지만 공심위는 당규 개정이나 해석 권한이 없다. 결국 당이 해결해야 할 문젠데, 이 시기에 당규를 개정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가뜩이나 ‘차떼기당’ 이미지를 겨우 벗어가는 마당에 국민적 시각이 따갑게 나온다면 역풍에 휘말려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정치적 해결이 자칫 오만으로 비춰진다면 큰 낭패다. 당규대로 하자니 내분이 깊어지고, 김 최고위원을 살리려니 국민의 시선이 따가운 게 한나라당의 고민이다.
이삭줍기는 하지 않겠다는 또 다른 보수신당이야 강 건너 ‘꽃놀이패’를 지켜보는 입장이겠지만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된 한나라당이 묘수풀이로 어떤 수를 내놓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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