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월요논단]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6.10.23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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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과 자서전은 비슷한 의미이지만 어느 것에 시점을 두었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자서전은 환경이나 시대에 맞춰 자신이 겪으며 느꼈던 감정, 상황 등을 쓴 글이여 객관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회고록은 다르다. 회고록은 글 쓴이의 시대, 환경에 맞춰 과거를 되돌아보며 쓴 글이다. 이처럼 유명한 인물들은 자기 한 평생에 있었던 일들을 회고록 이나 자서전으로 책을 출판한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임기 중 하야하거나 서거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자서전 1, 2권을 출판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회고록을 펴냈다.
퇴임 후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쓴 미완성 원고로 엮은 ‘성공과 좌절’, ‘운명이다’란 두 권의 회고록을 남겼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회고록을 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시간’이란 회고록을 출판했다.
다만 문학성이 부족해서인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세태 탓인지 모르나 대통령들의 회고록은 세계적 화제는 커녕 국내에서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대통령들의 회고록과 달리 최근 노무현 대통령 때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장관이 출판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전국 서점을 강타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이 돌발변수로 작용하면서 정치권이 흔들리고 있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 중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전 노무현 정부가 북한 김정일 정권에 의견을 물어봤다’는 대목에서 뇌관이 터졌다.
당시 유엔에서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할 때 북한측에 미리 물어보고 했느냐, 아니면 결정한 후에 통보했느냐가 쟁점이다. 후자라면 당시 한반도 상황을 고려할 여지라도 있겠지만 전자라면 문제는 다르다.
여당은 ‘국기문란’ 사건이라며 야당에 대해 총공세를 퍼붓고 야당은 그런 적이 없다며 역시 총력방어에 나섰다. 더욱이 내년 대선에서 유력 후보로 간주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관련 여부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유엔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기권한 것은 북한에 우리가 어떻게 할 지 물어본 뒤 내려진 결정이라는 송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증언을 놓고 당사자들 사이에 ‘진실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에 물어보자는 제안을 했다는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 관련 인사들은 회고록 내용을 부정하고 나섰다. 기권이 결정된 후 북한에 통보만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송 전 장관은 “모든 것은 책에 있는 그대로이기에 더 덧붙일 말은 없다”고 사실을 재확인해 줬다. 송 전 장관이 지목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해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누가 거짓 말을 하고 있는가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어쩌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크게 번질지를 송 전 장관 자신도 몰랐을 법 하나, 회고록 속의 노무현 정부 과거사 논란은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정확한 진실을 가리는 쪽으로 결말이 나야 할 것이다. 만일 회고록이 사실이라면 그간의 정책 오류를 시인하고 구체적인 북한 인권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또 그 반대라면 이념 검증 공세를 중단해야 한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여야를 떠나 진실을 호도하는 술책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진실 규명으로 국기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 한다.
북한에 물어보고 유엔 인권결의안을 기권했는지 여부의 답은 간단하다. ‘했으면 했다’, 안 했으면 ‘안 했다’고 답 하면 끝날 일이다.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다음 문제다.
때문에 시간을 끌면 끌수록 서로가 의심만 부추길 뿐이다. 또 시간이 가면 갈수록 깊이와 넓이를 더해갈 것이다. 지금 나라 안팎의 상황은 정치권이 한가하지 않다.
발등의 불인 북핵 문제에다 심각한 경제난까지 겹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치권이 극한 대립으로 국론 분열을 이르켜서는 안 된다. 회고록을 놓고 벌이는 논쟁이 과연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 논쟁인가.
국내, 국제 상황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은 지경에 지금 에너지를 소모하는 방향으로 허비해서는 안 된다. 그때의 진실을 가감없이 밝히고 국민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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