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평] 사람 관계를 끊어버리는 김영란법
[충남시평] 사람 관계를 끊어버리는 김영란법
  • 김법혜 스님 / 민주평통자문회의 중앙상임위원
  • 승인 2016.10.24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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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민들의 온정이 담긴 ‘떡 선물’이 유·무죄의 갈림길에 섰다.
춘천경찰서 수사관에게 4만5000원짜리 떡 선물을 한 민원인 A 씨가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김영란법 시행 후 첫 재판인 만큼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직무관련성과 대가성’ 여부가 유·무죄의 관건이다.
A씨는 경찰관의 예우에 고마워 아무런 생각없이 떡을 선물로 보냈는데 이 떡이 김영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됐다.
흔히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란 속담이 이제 ‘떡 본 김에 재판을 받게 됐다’로 바뀌어야 할 판이다.
예로부터 떡은 우리 민족의 일상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먹거리이자 문화 그 자체였다.
떡을 빼놓고 관혼상제를 논할 수 없음이 그 방증이다. 떡 문화는 한민족의 삶의 숨결과 민족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유문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 보편화 됐기 때문이다.
떡이 일상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는 조상의 지혜와 철학이 녹아 있다. 떡은 케이크에 비해 값이 저렴하고 우리 입맛에도 맞아 소소한 선물용 수요로 만만찮다.
가뜩이나 줄어든 쌀 수요 촉진에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런 떡이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때문에 떡이 수난을 치르게 됐다.
해마다 명절 인사치레로 보내던 떡인데 대형 거래처를 잃는 ‘참사’로 이어지는 등 아찔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낭패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법을 문명사회 원칙에 맞춰야 된다.
부패한 공직자를 철저히 처벌한다는 법의 취지와 목적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둘러싼 형사처벌과 형사절차 편입 가능이 법이 소기의 목적대로 우리 사회를 한층 더 깨끗하게 만들어줄 것인지, 허울뿐인 규범으로 남아 수사기관에 의한 자의적 기소와 처벌만 가끔 이뤄지게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대기업 직원들과 접촉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는 게 지배적 여론이다.
대기업 직원들은 괜한 의심을 살까 두려운지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꺼린다. 협력업체 처지에선 거래처와 친분 쌓기가 어려워진 셈이됐다.
김영란법과 무관한 일반인 사이의 만남에도 장벽이 생긴 것이다.
아니면 ‘면피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사업주가 임직원의 위법을 막기 위해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양벌 규정의 면책 사유에 해당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민간인 사이에서도 이 정도니 공직자들의 외부인 기피 현상은 얼마나 더 심할지 상상이 간다. 게다가 갈피도 못 잡고 모호한 입장을 취해 있는 해당자들은 혼선에 얽매여 어쩔 줄을 모름다.
대표적인 것이 카네이션과 캔커피 사례다. 권익위는 제자가 은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전하는 카네이션이나 커피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코미디 같은 법이다.
권익위가 ‘안 된다’고 하는 사례를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공직자는 상사의 부친상 조문 시 부의금을 내면 안 된다. 민원인은 수고한 공무원에게 음료수를 전하면 안 된다. 학부모는 운동회에 음식을 가져가 교사와 나눠 먹으면 안 된다.
이처럼 국민권익위원회가 법령 해석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탓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명 김영란법은 1993년의 금융실명제법보다 파괴력이 더 크다고 할수 밖에 없다.
김영란법은 대상자인 공직자 교직원 언론인 등은 물론이고 이들과 만나고 접촉하는 사람들도 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사실상 전 국민이 대상이다. 게다가 김영란법은 밥 먹고 술 마시고 경조사에 오가는 등 보통사람들의 실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김영란법은 전 국민을 꽁꽁 묶어버리고 말았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사람들은 자기돈을 내서 밥 먹고 술 마시는 게 아니라 만남 자체를 기피한다. 오해를 사는 게 싫고 각자 계산하는 것도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의 근원적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단절하고 만남을 끊어버리고 고립화하는 법이다. 사람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다.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만물이 서로 통하지 못하고 상하의 마음이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면 철학의 빈곤이 안타깝다. 이 법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강력한 반부패법은 맞다.
부패 추방의 세계적 흐름에 발 맞추고 반칙과 특권이 만연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오랜 노력이 맺은 결실이여 기대는 된다. 하지만 법 뒤에 숨은 결코 작지 않은 문제점들은 이 법과 법이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확신을 흐리게 한다.
무엇보다 모호성과 예측불가능성이 걱정돼 안개가 하루속히 걷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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