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 호민론
[목요논단] 호민론
  • 박창원 교수 충남도립대 인테리어패션디자인과
  • 승인 2016.11.3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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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의 국민이 서울 광화문을 중심으로 모였고 청와대를 포위하고 포요하였다. 대통령을 하야하라고 소리쳤다.
농민들로 구성된 ‘전봉준 투쟁단’도 서울을 향해 항군하다 양재에서 경찰들에 의해 제지되었다. 예산이 고향인 전국농민회 의장은 경찰봉에 머리가 터져 피흘리면서도 저항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추운 비와 눈 내리던 광화문에서 국민들은 언 발을 주무르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정치인들은 대통령이 국민을 고생시킨다고 말했고 국민들도 ‘끝내 이기리라’는 양희은의 노래를 함께 불었다. 전국의 지역 국민들 역시 모두 함께 국가기강을 문란케 한 통치자와 그 옆에서 이익을 챙기던 고위 관료들에 대해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그 사이 대통령과 새로운 변명거리와 모르쇠는 계속되었고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새로운 작전에 돌입했다. 4%의 국민들은 그 변명거리에 대해 타당성을 주장하거나 광화문에 모인 국민들 종북좌파라고 비난하며 그들의 마지막 남은 조그만 입지를 세우고자했다.
두 갑자 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도 선비들과 백성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활동 때에도 이와 비슷했다. 관군은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함께 우리 백성들을 기관총으로 죽이고 일본도로 우리 민족과 조선의 국민들을 죽였다. 참으로 계속되어 오고 있는 역사의 패러디이며 평행이론이다.
허균의 글 중 ‘호민론’이 있다. 허균은 허난설언의 동생이자 당대의 천재였다. ‘홍길동전’이라는 소설을 통해  백성들을 괴롭히는 현 대통령과 그 옆에서 이득을 보며 떨어진 음식을 주어먹는 타락한 정치인들을 공격한 인물이다.
그는 호민론을 통해 백성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항민, 원민, 호민이 그것이다. 항민은 항상 눈앞의 일에만 얽매여있고, 이루어진 일에 즐거워하면서, 순순하게 법을 받들며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자이다. 국정에 임하는 자들은 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저항을 하거나 원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원민이다. 원민은 모질게 착취를 당하여 피부를 벗겨지고 뼈가 부서지면서도, 집에 들어온 수입과 땅에서 나는 소출을 끝없는 요구에 다 바치면서 시름하고 탄식하고 윗사람을 원망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국정에 임하는 자들은 이 원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원망만하지 전혀 행동에 옮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마는 존재들이고 그렇게 살다가 죽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민은 다르다. 호민은 종적을 감춘 채 몰래 다른 마음을 품고서 세상사를 흘겨보다가 국정 농단이 발생하고 사회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국민이 어렵게 되면 자기가 바라는 것을 실현하고자 분연히 일어선다. 이들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저주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어 그들의 요구가 관철되고자 하는 시대적 흐름이 무르익으면 거사를 이룬다.
그들이 밭두렁 위에서 팔을 휘두르며 한 번 소리를 지르면, 원민들은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고 함께 계획하지 않고서도 똑같이 외쳐댄다. 항민들도 또한 살길을 찾고자 어쩔 도리 없이 호미와 고무래, 창, 몽둥이 따위를 들고 따라와서 국정농단을 저지른 무도한 놈들을 죽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허균은 진나라가 망한 것은 진승과 오광의 난리 때문이었고, 한나라가 어지러워진 것도 황건적의 난이 원인이었으며, 당나라가 쇠퇴하자 왕선지와 황소가 그 틈을 타고 난을 일으켜 끝내는 나라가 멸망하고야 말았다고 썼다. 이는 모두 백성을 괴롭히고 자기만 위하는 국정농단을 권력자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으로 호민의 궐기가 이뤄졌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무릇 하늘이 위정자를 세운 것은 백성을 돌보려는 것이지 단 한명이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계곡을 채울만한 큰 욕심을 채우라는 것이 아니기에  진나라 등의 재난은 마땅히 당한 것이라고 호민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지금 그 하늘은 국민이다.
지난 주말 우리 국민 모두는 세계의 항민과 원민들에게 호민의 정신을 던져주었다. 지금 세계의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 극단화되어 가고 있는 빈부격차의 문제로 자본주의가 타락하고 있다. 또 점차 나치와 일본 제국주의를 숭배하는 자들이 강대국의 지도자들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때 우리 국민은 민중항쟁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고 우리 국민이 세계의 호민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인의 중심에서 인류사의 진보를 이루고 있다. 과거 프랑스가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통한 세계의 중심에 서 이뤄냈던 그 진보를.
[박창원 교수 충남도립대 인테리어패션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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