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중 칼럼] ‘일모도원(日暮途遠)’의 대한민국
[김강중 칼럼] ‘일모도원(日暮途遠)’의 대한민국
  • 김강중 선임기자
  • 승인 2016.12.20 16: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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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2016년이 저물고 있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했던가.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이 먼 대한민국이다.

다시 세밑이다. 올해 교수신문에는 어떤 사자성어가 선정될지 궁금하다.

지난해 이맘때 전국교수협의회는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혼용(昏庸)의 혼(昏)은 해가 져서 사방이 어두워진 상태를 뜻한다. 사리가 어둡고 품성이 포악한 군주를 일컫는 말이다.
부언하면 용(庸)은 보통 사람에도 못 미치는 용렬한 인품을 뜻한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무너졌다는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무도’와 합성된 말이 ‘혼용무도’이다. 1년이 지난 오늘의 상황에 맞는 촌철살인의 표현이어서 경탄을 금할 수 없다.

병신년을 돌아보니 그 어느 해보다 격절스런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출발, 행진이란 3월, 이세돌과 로봇 알파고 간 바둑대결은 세계인의 이목이 쏠렸다. 이세돌의 완패였으나 4차산업의 뒤쳐짐과 두려움을 확인했다.

상반기를 마칠 즈음 영국의 브렉시트로 주가와 환율이 요동치는 ‘검은 금요일’을 경험했다.
8월에는 리우올림픽에 환호했다. 가을로 접어든 9월은 한반도를 강타한 지진으로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지난달 9일에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경제, 안보 등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그의 당선으로 주한미군 철수 담보로 방위비 증액이 불가피하게 됐다. 핵개발로 북한 관계는 악화되고 한미FTA 재협상 등 양면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미·중 간 태평양 제해권의 다툼은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될 전망이다.
내년에 출범할 트럼프 정권이 한국과 대만을 놓고 중국봉쇄의 유불리를 따질 것이다. 동맹이란 컬러 뒤에 감춰진 실루엣 같은 그들의 책략은 한반도를 음산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런 국제적 흐름을 주시하기는커녕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의 상처이고 역사의 불행이었다.
정윤회와 십상시, 문고리 3인방의 암투는 2년 전 감지됐다. 그러나 우리 모두 정권의 서슬과 호도에 방기한 댓가가 아닐까.
견강부회일까. ‘4자방’ 국정조사 칼날이 향할 때 특정 정치세력이 이들의 암투를 부각시켰다는 설도 만만치가 않다.
당시 이런 해석은 ‘정윤회와 십상시’ 이슈가 단순한 찌라시 수준을 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난세의 시대에는 언제나 왕들은 무능했다. 주변의 환관들이 권력을 뒤흔들었다는 공통점도 빼 놓을 수 없다.

오늘에 견줘도 그렇다. 의식도 철학도 없이 면종복배의 수준 이하 문고리들만 즐비하다.
짐작되고도 남을 일인데 대찬 참모 하나 없고 허접한 딸랑이들만 넘쳐났다. 삭스핀과 송로버섯에 취해 방조한 것이 국정 파탄의 원인이 됐음이다.

검찰에 줄줄이 구속되면서 ‘국민께 죄송’이란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왜 나만 갖고 그래’하며 자해를 시도하고 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전 민정수석은 도망 다니며 청문회 소환에 불응하는 치졸함을 보이고 있다.

청문회에 마지못해 출석한 전 비서실장도 ‘모릅니다, 기억 없습니다, 본적 없습니다’모르쇠를 일관하며 국민을 우롱했다.
그런가하면 일부 ‘친박’ 특위의원들은 청문회에 앞서 최순실 핵심인사를 만나서 입을 맞췄다는 보도는 아연할 뿐이다.

용렬한 이들에게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안위를 맡긴 것 자체가 예고된 재앙이 아닐까. 하기야 줄 잘 서고 몇 문제 잘 푼 것 만으로 모든 것을 아는 양 설쳐대는 세상이다. 사과와 반성 보다 요설을 떠는 경망을 보노라면 차라리 연민이다.

오염된것은 권력만이 아니다. ‘바이러스 대한민국’, 한 달 새 AI로 살처분 닭·오리가 2000만 마리에 이른다. 그런데도 ‘심각’ 단계로 격상한 것 말고는 장관이나 대통령 대행도 현장에는 없다.
조선시대는 가뭄만 들어도 판서가 가장 먼저 사표를 냈다. 청백리 오리(梧里) 이원익은 60여 차례나 사표를 던졌다. 책임질 줄 알고 배짱 있는 인사가 나라를 이끌었던 것이다.

책임과 소신 없기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따 논 당상’인 듯 개헌과 호헌, 대통령 하야만 외치며 민생은 뒷전이다.
정치 불안에다 내수, 수출 부진에 미국의 금리인상은 곧 경제위기로 번질 것이다. 실업난과 실질소득 감소로 월 100만 원 미만의 생계가구가 13.01%나 된다고 한다.
경제 중심지 서울 강남지역 상가도 임대료를 못내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우리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대전시가 조성하는 안산국방산업단지에 유치한 기업이 한 곳도 없었다. 또 충남 장항국가산단에도 고작 1개 기업만 유치했다.
부동산 불황도 극심하다. 유성구 전민동 000아파트는 60세대가 전세도 매매도 안 되는 실정이다. 충남대 대학가인 궁동의 원투룸도 공실률이 30~40%에 육박하고 있다.
둔산동 골프 실내스크린 한 업자는 전년보다 25% 매출이 줄었다고 울상이다. 맥주집, 횟집, 의류, 대리운전기사 등 누구나 IMF 시절보다 어렵다고 하소연이다.

사실 국민들은 등 따숩고 배부르면 정치에 관심도 없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변할지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새해는 국격을 되찾고 반듯한 나라로 서는 초석을 다져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 소명이고 상처 입은 국민들의 소망이다. 나아가 선진국 진입의 성패를 가르는 일이기도 하다.

[충남일보 김강중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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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기 2016-12-22 18:38:56
책에서 오리 이원익에 대한 글귀를 읽다가 검색하니 이 기사가 있어 반갑다.
그는 뜻과 행동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견주고,분수와 복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함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한다.
지금의 우리의 정치꾼들은 그 반대로 살고 있음에 탄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