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내국 칼럼] 누가 이들을 길거리로 내모나
[한내국 칼럼] 누가 이들을 길거리로 내모나
  • 한내국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7.01.0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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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탔다가 생존한 학생들이 새해들어 처음으로 촛불집회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이달 9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다.
7일 광화문 집회는 오후 5시 30분 열리는 본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공개발언을 하고 공연도 4·16 합창단이 맡는 등 세월호가 중심이 돼 치러진다.
누가 이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헌재에 넘겨져 헌재가 심리를 본격화하는 시점에 광화문에서는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국민들의 물결이 쉬지않고 넘치고 있다.
삭풍이 부는 한겨울의 중심에 국민들과 지도자들의 서글픈 현실이 마치 바람앞에 놓인 불꽃을 연상시킨다.
삭풍이 불어오는 길거리에서 국민들은 과거 어려움에 놓였던 우리 민족에게 다가선 시련과는 분명 다른 생각을 품고 잇을 터이다.
“이런 어려움을 다시는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를 바란다”는 또 다른 희망을 꿈꾸는 바람이고 또 다시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허망하고도 원통하게 보내야만 했던 어린 자녀들의 한을 풀어주지 못한 어른들의 자책을 실어 세월호 진실을 외치고 있다.그 자책은 ‘어른들이 이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촛불을 들고 나선 우리 국민들은 그 1차적 책임을 지도자들에게 물으면서 그들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의 책임을 자책하려 하는 것이다. 통렬한 반성이 없는 지금의 시국에 촛불은 그런 반성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도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로는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지도자들은 이들 국민 앞에서 가식과 일탈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비겁한 것이 아닌가. 이제라도 국민 앞에 나서서 그들의 떳떳한 잘잘못을 함께 얘기하고 잘못이 있다면 통렬히 반성하는 기회를 가져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현실이 서로 다른 해석과 서로 다른 생각이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처럼 보이는 것은 왜인가. 결국 세월호 이후 적어도 이 사고의 책임만큼은 우리 어른들 누구에게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1000일. 당시 직접 사고를 당했던 우리 자녀들이 광화문으로 나선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를 말릴 수 없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잘못과 한없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적어도 그 책임에서는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나 우리 어른들이 다르지 않다. 단지 책임을 모면하려는 이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 뿐이다.
그러니 나라를 망친 태강의 동생들이 불렀다는 노래가 결코 우리와 달라보이지 않는다.
옛날 중국의 하나라 계(啓)임금의 아들인 태강은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만 하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난다.이에 그의 다섯 형제들은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의 노래는 모두 서경(書經) 오자지가(五子之歌)편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막내가 불렀다고 하는 노래에는 이러한 대목이 보인다.
만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꼬. 답답하고 섧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萬姓仇予, 予將疇依. 鬱陶乎予心, 顔厚有)
낯가죽이 두꺼워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부른다.
바로 이 차이다. 책임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다.
온 나라안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깊은 시름과 수렁에 내려앉아 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국민들은 집으로 가고 싶어 한다.
세월호사고의 충격과 고통에서 그렇고 국정농단으로 엉망진창이 된 나라살림의 압박에서도 그렇다. 그 뿐이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라도 가져야 비로소 집으로 향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이 일에 책임있는 지도자들의 통렬한 각성이 필요하다.
광화문에서 또 전국의 촛불집회에서 지금도 태강의 동생들이 불렀다는 노래가 흐르고 있다.
그러려면 지금이라도 불어오는 삭풍 뒤엔 완연한 봄이 다가옴을 알려야 한다.
[충남일보 한내국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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