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칼럼] 아직도 살아있는 ‘1도 2부 3쩐 4빽’의 원리
[김원배 칼럼] 아직도 살아있는 ‘1도 2부 3쩐 4빽’의 원리
  • 김원배 목원대학교 전 총장
  • 승인 2017.01.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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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선배님 한 분을 뵙고 세상사를 개탄하면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눈 적이 있다.
이 선배님은 소위 S대학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검사로 활동하다 정계에 진출, 큰일을 많이 하신 분이다.
그의 이름 석자를 말하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수 있는  분이고 얼마 전까지도 중책을 맡아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이다.

우리는 정말로 오랜만에 만났고 단 둘이 만나서 이야기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서먹서먹한 자리일 것 같았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참 동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저런 염려들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다가 저보고 ‘1도 2부 3쩐 4빽’을 아느냐고 물었다.

내 나이 60대 후반이라 세상 살만큼 살았는데도 처음 듣는 말이라 했더니 노선배는 정말이냐고 물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학교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너무 순진해서인지 사실 처음 듣는 소리라 모르겠다 했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말은 옛날 서대문 형무소 감방 벽에 어떤 죄수가 긁어놓은 글인데 이 글은 숱한 세월이 흐른 지금도 통용되는 것 같다며 이 글을 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하였다.
즉, 1의 ‘도’는 죄를 짓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면 먼저 도망부터 가라는 것이고, 2의 ‘부’는 도망가다 잡히면 무조건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3의 ‘쩐’은 혐의 사실을 부인해도 통하지 않으면 돈으로 해결하며, 4의 ‘빽’은 돈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는 빽을 사용해 해결하라는 뜻이라 하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 1912년에는 서대문감옥으로 1923년에는 서대문형무소로 개명이 됐고, 그 후 서대문구치소 등의 이름으로 활용되다가 다른 곳으로 이전했으며, 1998년 이후에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후손들에게 역사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에는 과거 일제치하에서 윤봉길, 이봉창 의사등 수많은 애국자들이 투옥되어 모진 고문과 사형 등 말로표현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당했던 곳이다. 이런 역사적인 현장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법망을 피해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 하나하나의 행동이 의미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자기욕심만 채우려는 못난이들은 어떻게든 현실을 모면하려는 생각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실 민주주의 사회의 장점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평등사상이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못하고 돈이나 빽(배경)으로 지은 죄를 피할 수 있다면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사회는 옛날부터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신문지상에 종종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큰 죄를 지은 죄인이 도망을 가고 도망을 가다 수사당국에 체포가 되면 지은 죄를 부인하면서 막강한 금력을 이용, 변호사를 선임한 후 온갖 빽을 사용하여 석방되는 경우들을 보곤 한다.
몇년 전 어떤 대기업회장에게 벌금 254억 원이 확정됐는데, 법원에서 상환 능력이 없다하여 봉투 접기와 쇼핑백 만들기 등 단순노동으로 하루에 5억 원씩 49일간의 노동으로 254억 원을 탕감시켜 주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평범한 직장인이 회식 후 음주운전을 하여 400만 원의 벌금을 선고 받고 하루에 5만 원씩 80일간 교도소에서 노역한 사실이 있었다.
이 두가지 경우를 보면서 법치주의의 대원칙인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니 ‘1도 2부 3쩐 4빽’이라는 말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사회가 정의사회가 되고 공정사회가 되어 이젠 서대문형무소의 벽에 있는 이 말이 영원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충남일보 김원배 목원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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