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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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 영주부인 고다이버 신화 (2)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3.11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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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시어의 고다이버. 긴 머리로 옷을 만들어 걸친 채 말을 타고 성내를 도는 장면이다.
고다이버는 노팅엄 출신으로 당시에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머시아 가문’의 백작 리어프릭과 1035년 전후에 결혼하였다.
그녀는 당시의 법에 따라 남편과는 별개로 재산을 상속하였으며 각각 아들과 딸 한 명씩을 가졌다.
아들 엘프가(Ælfgar)는 1062년에 죽었으며, 그녀의 딸 엘지스(Ealdgyth)는 1066년 웨일스의 왕비가 되면서 가문으로서는 최고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고대 자료에 의하면 ‘리어프릭 백작과 백작부인 고지프 혹은 리어프릭 백작과 그의 침대 파트너’(Leofric eorl and Godgifu pæs eorls wif, Leofric eorl and his gebedda)라는 이름과 지위가 나온다.
여기서 침대 파트너(gebed da)란 의미는 백작 부인보다 성적인 의미가 강조되어 남성의 첫 번째 침대 파트너란 의미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도 있다.
자료에 의하면 고다이버는 귀족적이고 우아하며 경건하고 성모 마리아에 헌신하였던 것 같다.
그녀가 리어프릭과 만나게 된 시기는 1035년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영적인 가르침을 받았던 시기였으며, 오빠가 링컨셔 지방을 다스리는 지사였던 것으로 미루어 그녀의 아버지도 그와 비슷한 지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뉴워크에 소재한 부동산 50 파운드를 포함하여 여덟 개의 카운티에 소유하고 있던 그녀의 재산은 모두 160 파운드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재산은 당시 영국에서 여성으로는 네 번 째에 해당하는 규모의 부자였으며, 그녀는 이 같은 재산을 바탕으로 성모 마리아 상 주위에 신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성경과 십자가를 만들어 놓아두었고 헌금도 비교적 많이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녀는 50대 중반의 나이로 1067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잉글랜드에서 4명의 가문으로부터 아홉 명의 왕이 통치하는 것을 경험하였다.
고다이버는 노르망디공 윌리엄이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왕을 죽이고 새로운 영국 왕이 되는 시기에 사망했다.
이 같은 정치적 환경 속에서 볼 때 고다이버 신화가 탄생했던 시기는 11세기 중엽이다.
이야기를 약간 거슬러서 1016년 덴마크의 쿠누트 왕이 잉글랜드 왕이 되었을 때 국왕은 자신을 지켜 줄 귀족을 손수 선발하여 새로운 작위로 ‘백작’(伯爵)의 칭호를 부여하였는데 당시 백작 칭호를 얻은 귀족은 웨식스 지방의 고드윈, 노섬브리아 지방의 시워드, 그리고 고다이버의 남편이자 머시아 지방의 실세인 리어프릭 세 사람이었으며, 이들 가문은 1066년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이 영국을 침략할 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고다이버의 남편 리어프릭 백작은 여러 명의 왕을 옹립함으로써 죽을 때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로 해럴드 1세(1035-40), 하르사크누트(Harthacnut, 1040-42), 참회왕 에드워드(1042-66)로 넘어갈 때가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1041년 워스터 주민들이 국왕에 반기를 들어 주민폭등을 일으켰을 때 왕명을 받고 출동하여 그 일대를 쑥밭으로 만들고 워스터 수도원과 대성당을 유린한 일에 앞장선 전력도 있다.
이 같은 그녀의 남편에 대한 성격, 그리고 윌리엄공의 영국정복 이후에 성립된 봉건제도와 조세정책이 맞물리면서 고다이버 신화를 낳은 배경이 아니었을까?
중세기에 여인들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머리를 땋지 않고 푸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대중 앞에 서려면 뒷머리에 쪽을 져야만 한다.
반면 결혼한 여성들은 남편과의 사적인 공간에서만 머리를 풀 수 있었다.
그러므로 백작부인 고다이버가 머리를 푼 것은 ‘성적인 가능성’ 또는 그와 유사한 암시를 대중들에게 밝히는 일종의 스캔들적인 사건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긴 머리카락으로 육체를 가림으로써 굴욕을 최소화하고자 하였고, 이를 실천하여 자신이 바라는 희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다운타운을 누드 상태로 말에 올라 걸어가는 것을 주목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스토리 전개상 실제로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그녀의 알몸을 보고자 했다면 그녀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고, ‘누구도 보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문학적으로 볼 때 그녀의 긴 머릿결은 ‘몸을 가리는 의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녀의 몸은 감춰진 것이었고, 또 누구도 볼 수 없게 만드는 능력도 갖고 있다.
그녀는 시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성스러운 존재, 사회적 실천가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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