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악의 평범성을 경계하라
[양형주 칼럼] 악의 평범성을 경계하라
  • 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 승인 2017.02.1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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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2월 이스라엘의 재판정에는 작은 키에 주름진 얼굴을 한 평범한 50대 백인남자로 보이는 한 사나이의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이 재판을 취재하기 위해서 전 세계의 수많은 언론사들이 구름같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도대체 이 남자가 누구이기에 이렇게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을까?
이 사나이의 이름은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다. 아이히만은 2차세계대전 때 독일이 점령했던 유럽 여러지역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체포해서 아우슈비츠와 같은 유대인 포로 수용소로 강제 이송하는 일을 했던 나치의 친위대 대령이었다.

1945년 독일이 전쟁에서 패망하자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로 도망가서 숨어 들어가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 이름도 리카르도 클레멘트로 바꾸었다.
그렇게 15년을 숨어살았지만,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가 집요한 추적끝에 아히히만의 소재를 찾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체포하여 이스라엘 전범재판소에 회부한 것이다.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은 자신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심지어는 독일 철학자 칸트의 정언명령을 인용하며 자신은 오직 유대인에 대한 증오나 연민과 같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 아니라, 오직 국가의 명령에 충실히 행동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이 재판현장에 참여했던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의 특별취재원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아히이만의 재판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는 아이히만을 뛰어넘는 제국의 구조적인 죄의 힘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담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펴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 아이히만을 비롯한 한 사회를 지배하는 악의 평범성을 지적한다.

나찌는 국가의 명령에 따르면서 아무런 생각이나 저항없이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도록 했다. 독일군 군복을 입으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습관적으로 악을 자행하고 인간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악을 너무나도 쉽고 흔하게 저지른 것이다. 악한 사회의 사회구조 속에 악은 평범한 일상이 된다.
한 나라의 시민의식이 성숙할수록 점점 사회에 만연한 악의 평범성에 눈을 떠야 한다.
반대로 시민의식이 미성숙할수록 적발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악의 평범성에 익숙해져 이를 회피하려 한다.

처음에는 양심에 찔렸지만, 이제는 아무 일도 아닌 듯 천연덕스럽게 자행하는 일들은 없는가? 이제는 이전보다 이러한 구조적 악의 평범성에 좀 더 민감해져야 한다.

[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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