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내국 칼럼] 개헌 고민없는 대선이 걱정이다
[한내국 칼럼] 개헌 고민없는 대선이 걱정이다
  • 한내국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7.03.30 1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월 대선이 임박하면서 정권획득에만 함몰한 나머지 개헌논의가 수면 밑으로 갈아앉고 있어 고민이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여야가 없어진 각 정당들은 급박해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선출에 골몰하면서 권력구조 개편으로 대변되는 개헌문제가 묻힌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중차대한 문제는 헌법을 고쳐야 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면서 검토돼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권력구조를 바꾸는 문제라는 점에서 현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할애하면서까지 구조개편을 실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지금처럼 격변기에, 그것도 현행 대통령제의 폐해가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이라야 필요와 시급성이 수면 위로 오를 일이겠지만 개헌없이 대선이 치뤄질 경우 이 역시 과거문제가 고스란히 답습되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대선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더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개헌을 추진할 생각이 없어 보이고 안철수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대선후보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개헌에 따른 대통령 임기 단축에 대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면 국회 개헌특위 논의를 촉진시킬 것이고, 그 결과가 임기 단축을 포함한다면 따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임기 단축에 대해 유보적이었던 안 지사가 이를 전격 수용하면서 여야 대선후보들 가운데 아직 개헌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후보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두 명뿐이다.
안 지사의 가세로 개헌 논의는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었지만 당내 후보경선이 본격화되면서 이 역시 수면밑으로 가라앉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졌다.
정치권 내에 개헌 지지세력이 두텁게 포진해 있는 분위기이고 이미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각 당이 마련한 분권형 개헌안을 단일 개헌안으로 통합한 뒤 대선 이전이나 대선일에 맞춰 국민투표를 하기로 하는 등 조기 개헌에 합의했지만 이 역시 불투명하다.

현재 확실히 드러난 개헌 지지 의원들만으로도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재적 의원 과반은 훌쩍 뛰어넘고 개헌 의결정족수인 200명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하지만 개헌을 지지하는 후보들이 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지 않는 한 개헌추진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는 허울좋은 한 장군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에 조사(趙奢)와 염파(廉頗)라는 명장이 있었는데 이들은 진(秦)나라의 침공을 수 차례 격퇴하였다. 당시 진나라의 대장이었던 백기(白起)는 염파의 지략(智略)을 당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조나라에 거짓정보를 흘렸다. 조나라 왕은 결국 염파를 대신하여 조사의 아들인 조괄(趙括)을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병법을 공부하였지만 실전(實戰)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장군의 직에 임용되지 않기를 원하였으나 조나라 왕은 끝내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전투에 내보냈다.
진나라 장군 백기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나라 군대를 유인하여 공격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괄은 진나라 군사의 화살에 죽고 수십만의 조나라 군사들은 항복했다가 모두 생매장 당하였다.
지상병담(紙上兵談) 또는 탁상공론(卓上空論)으로도 비유되는 이 일화는 곧 하나의 결정이 국민의 생사와 직결된다는 지금의 상황과도 비유되고 있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
이미 30년이나 된 1987년 헌법체제로는 우리 사회의 변화상과 시대 정신을 담아내기 어렵다는 공감대는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3명 중 2명 이상이 개헌에 찬성하고 있는 것만 봐도 개헌 필요성은 절실하다. 과도한 대통령 권력 독점의 폐단과 위험성은 ‘최순실 사태’에서 충분히 목도했다고 본다.
헌재 결정에 따라 설령 조기 대선이 치러져 그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촛불과 태극기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골 깊은 갈등과 분열상에 비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탄핵 뇌관의 부담을 계속 떠안고 가야 할지 모른다. 이는 권력을 분산하고 권력 변동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헌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헌은 여론지지도가 높다거나, 뒤집기를 노려볼 수 있다거나, 차기를 기약할 수 있다거나 하는 개인적 이해관계보다 훨씬 가치가 높은 국가 명운을 가를 중대사이기 때문이다.[충남일보 한내국 편집국 부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