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반복되는 대통령의 비극을 바라보며
[충남시론] 반복되는 대통령의 비극을 바라보며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7.04.05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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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삶이 이렇게 될지 자신은 물론 국민 누가도 상상이나 했을까. 그것도 40년 세월, 누구보다 믿었던 최순실이라는 가장 가까운 인물의 갖은 비행으로 비롯됐으니 이게 무슨 운명인가?
되돌아보면 박 전 대통령은 유난히 우여곡절 많았던 삶이었다. 12살 때 부모 손을 잡고 들어간 청와대에서 10대를 보냈다. 그 후 프랑스 유학 시절, 어머니의 죽음에 아버지를 돕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왔다.

20대에는 그 곳에서 아버지마저 총탄에 잃었다. 그 후 정치에 입문, 40대에는 대구 달성에서 국회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했다. 50대에는 한나라당 대표로서 위기의 당을 지키고 잇따른 선거 승리로 정치 입지를 굳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깨끗한 승복을 하기도 했다. 60대는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면서 10대와 20대를 보낸 청와대를 33년 만에 다시 들어갔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최순실이란 검은 그림자 때문에 사상 첫 탄핵 대통령도 모자라 구속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제 스스로를 탓할 수 밖에, 누굴 원망할 수도 없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이 국가원수직에서 파면된 지 3주 만에 결국 영어의 몸이 됐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구속된 데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 세 번째이고, 임기 중 탄핵당한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다.
70년에 지나지 않는 짧은 헌정사인데도 전직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게 벌써 세 번째다. 언제까지 이같은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돼야 하는지 통탄스럽기만 하다. 헌정사에 또 한 번의 불행한 일이고 국격이 손상되는 일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법의 엄정함을 되새기는 계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배출된 11명의 대통령 가운데 퇴임 이후 보통사람의 생활을 하는 인물이 극히 드문 것은 우리 정치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이로써 19년 만에 치욕스러운 종언을 고했다.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된 것은 국민 모두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적으로도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일반 수용자 일곱 명이 함께 쓰는 12.01㎡( 3.2평) 넓이의 감방을 혼자서 쓰는 신세로 전락했다.
화장실과 세면장을 제외한 순수한 감방의 실내 면적은 2.3평이다. 그래도 박 전 대통령의 예우 차원에서 전용 독거실로 개조해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다른 수용자들과 같이 식사도 한 끼에 1440원짜리를 금속 식판에 먹고 뒷처리도 본인이 직접해야 한다. 또 이름 대신 수인번호 503호로 불러지고 있다.
국민이 뽑은 첫 여성 대통령의 비참한 추락였다. 우리는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또 박 전 대통령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인간적 동정심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의 불명예스러운 추락은 그 혼자만의 비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국가의 비운이자 국민의 불행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유, 무죄의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증거를 통해 가려질 것이다. ‘비선실세’로 불린 최순실 씨와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도 그 속에 포함된다.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의 심경은 그야말로 착잡하고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현행 대통령제를 보완하는 헌법 개정이 속히 이뤄졌으면 한다. 문제는 제도만 탓할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는 부패한 권력자를 내쫓는 데 주력했다면 지금부터는 부패한 권력자가 나오지 않는 토양 만들기에 눈을 부릅떠야 한다. 이를 운용하는 사람도 문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엔 하얀 목련 꽃이 피었다. 목련은 박 전 대통령의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가 생전에 무척 좋아했던 꽃이다.

법의 심판을 받기 위해 기약 없는 길을 떠난 박 전 대통령은 어머니의 상징인 집안에 핀 목련꽃을 생각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충남일보 임명섭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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