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내국 칼럼] 대한민국이 없다
[한내국 칼럼] 대한민국이 없다
  • 한내국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7.04.1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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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나라 말년, 범증(范增)은 항량(項梁)에게 투항하여 그의 모사(謀士)가 됐다. 항량이 죽은 후 그의 조카 항우가 그를 계승하여 진나라에 대항했다. 항우는 용맹하였지만 지모(智謀)가 없었으므로 주로 범증의 계획에 따라 작전을 수행했다. 범증은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유방(劉邦)을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곧 유방은 범증과 항우를 이간시키는 공작을 꾸몄다. 항우는 이 계략에 휘말려 범증을 의심하여 그를 멀리했다. 범증도 몹시 분개하여 항우를 떠나고 말았다. 얼마후 범증은 병사했고, 항우는 유방에게 망했다.

송(宋)나라 소식(蘇軾)은 범증론(范增論)이라는 글에서 범증이 항우의 곁을 떠난 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물건이란 반드시 먼저 썩은 뒤에야 벌레가 거기에 생기게 되는 것이고(物必先腐也, 而後蟲生之), 사람이란 반드시 먼저 의심을 하게 된 뒤에야 모함이 먹혀들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물부충생 物腐蟲生)이라고 기록했다. 이 말은 내부에 약점이 생기면 곧 외부의 침입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세기의 회담이라 하여 미국과 중국이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마라라고라는 호화 리조트에서 미중정상회담을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이곳으로 초청해 6일(현지시간) 첫 미·중 정상회담을 가진 것이다.
세계 주요 2개국(G2)의 지도자가 벌이는 ‘세기의 담판’에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북핵 문제가 핵심 의제로 오를 것이 예상됐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그 시간에 미국은 시리아공습을 감행했다. 시리아정부를 돕는 러시아에 맞서 독가스 살포로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측을 향한 보복성 공격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 시리아공습을 통해 미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중국에게 가했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었다.

지금 SNS에는 미국의 4월 북한폭격론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북한 폭격설은 취임 후 북한을 보는 트럼프의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어서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상태다.
트럼프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었고, 앞서 5일 방미 중인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에서도 “아시다시피 내가 곧 플로리다에서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다”면서 북한은 ‘큰 문제’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내 책임’이라고도 했다.

또 트럼프는 전날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 최고경영자(CEO) 회동에서도 “북한은 정말 문제다. 인류의 문제다”라며 북핵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강조했었다.
문제는 미·중 정상이 내놓을 북핵 해법에 과연 우리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에서는 대북 선제타격론이 줄기차게 거론됐다. 미·중 정상회담 결과와 후속 사태를 놓고 불길한 관측도 없지 않다.
회담 결과에 대한 반발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 수위가 미국의 ‘금지선’을 넘어서고, 미군 전략무기가 북한 핵시설 등을 선제타격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지금 한반도는 군사적 충돌 위험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안보위기 지수가 한국전쟁 이후 최고조에 달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6차 핵실험 준비를 끝냈다는 징후가 포착된 지 오래고, 언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강행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위기상황에 당사자인 한국이 없다. 대통령이 궐위됐고 후보마다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씻어낼 만한 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증진시킬 만한 전략과 비전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그 어느 때보다 한미 간에 긴밀한 공조가 요구되고 있지만 미국과의 사이에 한국은 없다. 반면 일본은 발빠른 대응으로 한국의 대변인 역할까지 도맡아 자신들의 국익과 대미공조를 강화하면서 실리를 챙기고 있다. 북이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미국은 일본과 통화하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한반도 문제 논의에서 정작 당사자인 한국이 배제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우려가 고조되는 이유다.
미국 정상이 북한의 도발과 관련해 한국의 대통령 궐위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지만, 진정한 동맹관계라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와 통화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기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문제에 관한 한 트럼프가 한국을 중요당사국으로 거론치 않은 것도 이같은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다. 최고조로 치닫는 한반도 위기 속에 ‘한국은 없다’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항우가 멀리 한 범증(范增)과의 결별은 곧 ‘사드 찬반으로 엇갈린 신뢰하지 못하는 안보론’과 빗대어 한국의 위기를 걱정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핵은 핵으로만 견제가 가능한 상황에서 한국의 핵을 책임질 당사자가 없다는 것은 곧 한국의 위기가 현실로 다가서고 있음을 의미한다.
긴박한 시기에 국가의 운명을 책임질 대통령 후보들의 역량이 막중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얄팍한 자존심과 환상(?)에 기대는 후보가 있는 한 영원히 한국은 없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충남일보 한내국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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