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 칼럼] 가짓수만 많은 토론은 하지 말자
[김인철 칼럼] 가짓수만 많은 토론은 하지 말자
  • 김인철 대기자
  • 승인 2017.04.13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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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위된 대통령선거일이 25일을 앞두고 후보토론이 시작됐다.
이번 대선에는 미국식토론이라 하여 스탠딩 토론이 도입된다고 하니 고무적이다. 스탠딩 토론은 지금까지의 잘 짜여진 각본대로 벌이는 토론방식이 아니라 후보간 즉시 질문하고 바로 답하는 난상토론 형식이다.
그동안의 토론이 판에 박힌 듯 어색한 분위기에서 후보간 전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던 반면 난상토론은 보다 자유로운 후보들의 철학과 신념을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미국의 대선토론은 고만고만한 수준의 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고 흥행을 이끌지도 못하는 한국의 대선 토론과 달리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자체다.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상대를 일순간에 제압하곤 한다.
로널드 레이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1980년 현직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와의 대선 토론회 때 “경기침체는 당신의 이웃이 일자리를 잃을 때이며, 불황은 당신이 일자리를 잃을 때다. 그리고 경기회복은 지미 카터가 일자리를 잃을 때”라고 말해 승부를 결정지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간 토론회는 ‘진흙탕 싸움’이라는 비판도 받았으나 모범 답안에 의지하지 않고 정책과 이념을 자기식의 언어에 명쾌하게 담았다.
국민들이 보는 후보감은 그렇게 결정된다. 하지만 우리식 토론을 보면 수박겉핥기와 다름없다.
더구나 이번 대선은 준비기간이 짧아 후보간 검증기회도 없다. 그러니 당선만 의식해서 네거티브가 극성이다.
이런 사이 당선 직후 곧바로 국가경영에 나서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리더십이 필요한 정확한 후보를 골라야 하는 절명의 시간이지만 토론방식의 문제로 이런 우열이 보이지 않는 것은 큰 불행이다.

뿐만 아니라 여당없는 선거이면서 동시에 지역색도 사라진 지금 가장 중요한 후보들의 선거전략은 정책대결이다. 사드문제부터 무역전쟁과 경제난, 시급한 일자리와 복지 등 국민 안위와 관련 안보분야부터 의식주에 관한 모든 것까지 무엇하나 중요치 않은 것이 없다.
이제 각자 자신이 대통령 적격자라 하며 각자 내걸었던 정책들이 함동토론을 통해 시비가 구분되고 있다. 그런 토론이 이제 시작됐지만 국민들은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장면만 볼 수 있다면 이런 토론과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고 가짓수 많은 반찬에 젓가락이 가질 않는다면 결국은 국민들만 배곯고 힘들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유권자들이 각 후보의 장·단점을 꼼꼼히 파악해 ‘표심’을 결정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각 후보의 공약이 분야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지도 않다. 지지율 1위인 문 후보의 경우 아들 특혜취업 의혹 등 몇 가지 민감한 검증 시비에 휘말려 있다.
일방적 주장이 맞부딪치면서 소모적인 검증 공방이 이어지면, 진실은 오간 데 없고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만 커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선거 때마다 경험해 이제 식상할 만큼 익숙해진 시나리오다. 이런 ‘정치 적폐’를 일거에 쓸어버리는 방법으로 ‘TV 끝장토론’ 만한 게 없다. 자신의 정견과 비전에 자신 있는 후보라면 반대할 만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다.

미국처럼 우리도 특정주제를 놓고 토론도 결선토론을 벌이는 방법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합동토론이라도 벌이고 모든 현안을 꺼내어 놓고 끝장토론이라도 해서 후보 자신의 국정운영 철학과 신념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 수 있게 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판에 밖힌 한국식 토론, 변별력을 가리기 힘든 토론회는 ‘깜깜이 투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가슴 뻥 뚫리게 하는 미국식 대선토론을 우리는 볼 수 없을까.[충남일보 김인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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