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2018년 시간여행 간절히 원하지 않으려면
[김창현 칼럼] 2018년 시간여행 간절히 원하지 않으려면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7.04.24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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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Guillaume Musso)의 소설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의 소설은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기욤 뮈소의 소설은 다른 많은 장점도 있지만, ‘초현실적 설정’을 적절히 차용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극대화시킨다. 과거의 자신을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거나, 죽을 사람을 미리 알게 된다거나, 자기 소설에서 캐릭터가 튀어나온다거나 하는 설정들이다.

초현실적 시간여행을 통해서 기욤 뮈소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기로부터 구하고자 고군분투한다. 독자들은 현실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시간여행을 통해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기욤 뮈소의 어떤 소설에는 1년에 하루씩만 사는 사람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1998년에 딱 하루를 살고, 잠시 기절했다 일어나면 1999년이 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주인공이 한국에서 2016년 4월 25일경 정신을 잃었다, 2017년 4월 25일에 깨어났다면, 그는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불과 1년 전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잔뜩 일어나서 대한민국 정치판이 발칵 뒤집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략 떠올려 보아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가 파헤쳐진 것, 지난 겨울을 뜨겁게 달궜던 광화문의 집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수사,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 보수 후보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5월의 장미 대선, 이 모든 일들이 불과 1년 전 4월 25일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일들이다.

시간여행자를 깜짝 놀라게 할 이런 일을 겪는 동안, 우리는 ‘탄핵’과 ‘대선’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꼼짝 없이 사로잡혀 지난 1년을 보냈다.
탄핵 전까지 TV 화면을 빼곡하게 채운 것은 광화문의 촛불집회와 이에 맞선 보수단체의 태극기 집회의 화면들이었다. 이어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측과 헌법재판소의 탄핵공방이 뉴스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헌법재판소가 역사적인 대통령 파면 결정을 한 3월 10일 이후 정국은 급속히 대선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동안 우리는 이벤트가 아니었으면 주목 했어야만 할 뉴스들을 보지 않으면서 이와 같은 이벤트에 매몰되어 있기를 강요 당했다.
그동안 한국이 이뤄낸 탄핵이라는 ‘무혈혁명’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독재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섰음도 되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역사는 언제든 어떤 방향으로든 흘러갈 수 있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청년실업률, 이미 1300조 원을 돌파한 가계부채 문제, 일부 보도에서 언급되었던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 시나리오, 한반도의 안보를 오늘도 위협하고 있는 북핵실험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국정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리는 이런 중대한 문제에 쏟았어야 할 관심이라는, 비싼 기회비용을 지불하면서 대선을 치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월 23일밤 KBS 대선후보 텔레비전 토론회는 실망스러웠다. MB아바타 발언, 돼지발정제 사건, 후보사퇴의 요구 등을 보면서 권투경기를 관람하러 왔다가 조직폭력배의 피 튀기는 난투극을 보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낯이 뜨거웠다.
국민은 주권자로서 후보자들에게 정책과 공약에 대한 냉정한 토론을 해줄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2018년에 잘못 뽑은 대통령을 시간여행을 해서라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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