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양형주 칼럼]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 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 승인 2017.05.07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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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페이스북에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페이지가 인기다. 줄여서 ‘오싫모’라고 한다.
이 페이지를 시작한 청년은 초등학생 때 급식으로 나온 오이를 먹다가 토한 뒤 ‘오이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한다. 그 이후로 오이를 싫어했는데, 오이를 좋아하는 주변 어른들의 핍박과 강요 가운데 이해받지 못하고 억지로 오이를 먹어야 하는 아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는 것이다.
그는 페이지를 개설하며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선언을 발표했다.

1. 냉면을 주문할 때 ‘오이 빼주세요’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세상
2. 오이 걱정 없이 마음 놓고 편의점 샌드위치를 살 수 있는 세상
3. 김밥에 오이를 젓가락으로 일일이 빼느라 김밥이 흐트러지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
4. 학교 급식에 오이가 나와 고통 받는 청소년과 어린아이가 더는 없는 세상
5.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처음에 이 청년이 페이지를 시작한 것은 주변의 몇몇 친구들과 자기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페이지가 개설되자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더니 개설한지 한 달 만에 가입자가 10만 명에 육박하게 되었다.
개설자는 이런 폭발적인 반응에 감사해 하며 페이지 대문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세상에는 우리처럼 오이를 싫어하고,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다만 우리를 억누르고 지우려 했습니다. 당연한 듯이 냉면에 오이를 올리고, 당연한 듯이 샌드위치에 오이를 잘게 썰어 넣고, 또 당연한 듯이 김밥에 오이를 집어넣으며 너희는 참아라. 그렇게 조용히 숨어 지내라며 우리를 윽박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알았습니다. 나만 오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갈라놓았고, 우리는 그냥 조용히 파편화되어 이 세상에 존재했던 것뿐입니다”

아니, 오이가 뭐라고 이렇게 열광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된 방향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발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세상풍조가 우리를 한 방향으로 끌고 갈 때 우리는 여기에 반발하기 쉽지 않다. 그저 대세에 편승하는 것으로 안심하고 만족한다.
만약 여기에 반발하려면 용기와 반발을 위한 논리가 필요하다.
나는 세상풍조 가운데 중심을 잃지 않고 나의 중심을 지키며 살아가려 하는가? 이를 위한 중심을 지키기 위한 용기와 건강한 논리가 있는가?[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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