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분열의 5월을 치료하기 위하여
[김창현 칼럼] 분열의 5월을 치료하기 위하여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7.05.22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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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엘리어트라는 시인은 잘 알지 못해도, 시인의 유명한 구절인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3월만 해도 쌀쌀한 동장군의 기운이 어느 정도 남아있기 마련이다. 비로소 꽃이 환하게 피우기 시작하는 4월은 도대체 왜 그렇게 잔인했던 것일까? 항간에는 월급쟁이들이 4월에는 보너스가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잔인하다고 하는 설이 있었는데, 엘리어트 시인이 그런 사정을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다.
 

2014년부터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말하는 사람조차 드물어졌다. 시구가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2014년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하여 4월이 잔인한 달이 된 것은 기정사실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하고, 홀로 탈출한 세월호 선장은 공공연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더 오싹하게 만들었던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도 사실은 세월호 선실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당연한 추리였다.


'잔인한 4월'이 되자, 꽃피는 5월이 왔다. 5월에는 5·18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일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5.23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5월은 '잔인하다'고 말로도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한국인에게 가슴 먹먹한 달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5·18 기념행사에서 5월 18일에 태어나 사흘 뒤 총탄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 씨를 안아주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이 장면에서 많은 사람이 눈시울을 붉혔으며, 심지어 한 논평가는 '미세먼지 대책을 만들라고 했더니 국민을 울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이 있다. 2009년 5월 23일, 권양숙 여사가 검찰에 출두하기로 되어 있었던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의 곁을 떠났다. 영결식 당일, 무리한 검찰조사의 최종 책임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백원우 전 의원이 "사죄하라"고 소리를 지르자 경호원들은 그의 입을 막았다. 바로 그 때, 당시 노무현 전대통령의 마지막을 지켰던 문재인은 사과의 뜻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하여 가볍게 목례를 올렸고, 소동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문재인은 탄핵과 장미대선을 거쳐 20대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81.7% (리얼미터 조사)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90%를 넘나들던 93년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문민정부의 지지율은 서해페리호 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사고를 거치면서 싸늘해졌다. 당연하게도 대형사고는 문민정부의 책임만은 아니었으며, 개발독재체제 이면의 안전불감증과 부정부패가 낳은 결과였다. 그러나 결국 문민정부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그 결과, 국민의 신임은 땅에 떨어졌고, 문민정부는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허용한 정부로 기록되었다. 초반의 높은 지지율은 언제든 국민의 깊은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20년 전 경험한 바 있다.


5월은 국민의 정서적 분열을 동반하는 달이다. 차라리 4월처럼 잔인한 달은 견디겠지만, 서로 핏대 높이면서 손가락질하는 5월은 견디기가 어렵다. 국민의 정서적 분열은 우리가 이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다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군가 우리 대신 공부하고 싸워준 덕분에, 우리는 “그래도 지구는 둥글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술 마시고 기억이 끊겼다고 아픔이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분열의 아픔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5월을 더 제대로 이해하고 후손을 위한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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