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 칼럼] 언론탓 총리탓 직원탓…
[김인철 칼럼] 언론탓 총리탓 직원탓…
  • 김인철 대기자
  • 승인 2017.08.24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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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연일 시끄럽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민에 사과한 살충제 계란파동의 책임을 두고 벌어지는 식약청장의 책임론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당하는 책임있는 위치에 선 식약처의 수장이 국회에 나와 ‘탓’만 하면서 국회가 발칵 뒤집어지고 있다.
24일에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불려나온 식약처장이 살충제 계란파동의 원인과 과정, 책임을 규명하는 자리에서 이번엔 ‘직원 탓’을 하면서 뭇매를 받았다.
식품의약안전처는 국민의 먹거리와 치료약의 안전성을 총괄하는 기구다. 하지만 식약처는 이번 ‘문제가 된 계란을 먹어도 인체에 아무 영향이 없다’고 발표하면서 관련 업계는 물론 의약게와 시민단체에까지 ‘어이없고 무책임한 답변’이라며 뭇매를 맞았다.

문 대통령은 21일 “이번 파동으로 소비자뿐만 아니라 선량한 농업인, 음식·식품제조 업계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께 불안과 염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문 대통령의 사과 발언은 지난 14일 경기 남양주 마리농장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이 검출된 지 일주일 만에 나왔다.
살충제 계란 파동을 수습하는 정부의 조급한 태도도 혼란을 부추긴 면이 컸다. 신속한 조사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다가 지적을 받았고 결과발표도 어수룩했던 이면에는 이런 무책임한 리더의 행동이 한몫을 하고 있다.
식약처장은 국회에 불려나와 의원들의 질문에 웃으며 대담하다 질책을 받았고 이번 책임과 관련 질책에 ‘총리가 짜증내고 직원탓, 언론탓’으로 돌리면서 책임지지 않는 리더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예기(禮記) 단궁편(檀弓篇)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있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덤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 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했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라고 짧게 대답했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라고 했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가정(苛政)은 ‘번거롭고 잔혹한 정치’를 뜻한다.

정(政)을 징(徵)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잔혹한 정치, 무거운 세금이나 노역은 결국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에게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들이다.
국회에 불려나온 식약처장은 ‘물러나라’는 국회의원들에게 ‘물러날 뜻이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엔 닭에서도 DDT성분이 나오면서 방역체계가 얼마나 엉성한 나라에서 살고 있었는지가 드러났다.
외국처럼 사전에 문제들을 예방하는 법안을 만들지 못하면서 늘상 사고가 터진 후에야 관련 법안을 손보는 국회가 이번에도 체면을 구길 수 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뉴스에는 ‘쌈박질’만 연일 중심뉴스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사이 38년 전부터 사용이 금지된 DDT가 계란에 이어 닭에서도 검출되면서 충격이 커지고 있다. 부랴부랴 정부는 국민불안 해소를 위한다며 전국 모든 산란계 농장에서 출하되는 닭고기에 대한 잔류물질 검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또 한번 국제망신감이 된 국민먹거리 관리시스템으로 국민들이 아연실색하고 있다.
서둘러 사태를 해결하겠다면서 3일 전수조사 계획을 밝힌 정부는 과정에서의 미숙함으로 공분을 만들었고 식약처장은 이 상황에서조차 과정과 책임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먹거리 안전에 대한 신뢰는 한 번 깨지면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 정부는 문 대통령 말대로 밀식사육 환경에서 친환경 인증제까지 먹거리 안전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엉터리 수치와 통계 발표로 농정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당국자에 대한 책임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농피아(농식품+마피아)’란 말까지 나오게 한 농산물품질관리원과 친환경 인증기관 사이의 유착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끊어야 한다.
무너진 국민 신뢰를 다시 얻으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충남일보 김인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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