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
[양형주 칼럼]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
  • 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 승인 2017.09.2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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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강준만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아파트는 ‘살 집’이 아니라 ‘팔 집’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9%가 해마다 이사를 다니는 바람에 5년만 지나면 한 동네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로 바뀌는 일이 참 많다. 주거행위 자체가 상업적 행위가 된 것이다.
그리고 사는 아파트가 브랜드 네임이다. 어느 브랜드에 사느냐에 따라 집값이 달라진다. 이러다 보니까 아파트 이름을 브랜드 이름으로 바꾸고, 또 여기에 짝퉁까지 생긴다.
혹시 ‘푸르지요’ 아파트를 아는가? 한 대형 건설사의 아파트 명인 ‘푸르지오’와 비슷한 이름이다. 또 ‘라미안’도 있다.

형편이 이렇다보니 이제 아파트 광고에도 욕망, 탐욕이 버젓이 노출되어 들어간다. 이런 카피 문구를 들어보셨나 모르겠다. “욕심내세요, 어울림이니까”, “서울이 욕심내는 곳”, “욕심나는 투자처”, “욕심낼 만한 이유”, “욕심 낸 그곳에 꿈에그린이 온다”
또 광고 모델에 따라 아파트 별칭이 달라진다. 이영애 아파트, 김남주 아파트, 최지우 아파트, 송혜교 아파트 등등.
우리가 이렇게 이웃의 집을 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배후에는 인정의 욕구와 안정의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나, 이런 집에 살아, 인정해 줘! 나 이래 뵈도 이런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이런 인정의 욕구 배후에는 안정의 욕구가 있다. 인정을 받음으로 내 정체성과 삶의 환경에 안정을 찾으려는 욕구다.
주변에서 흔히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살아야지요”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가고 싶어요” “남부럽지 않은 결혼 하고 싶어요” “남부럽지 않은 집에서 살아야죠”, “남부럽지 않은 배우자 만나야죠”

남부럽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인식하고 한다는 말이다. 그 사람의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남부럽지 않게 되고 삶의 안정이 찾아온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삶의 안정을 찾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에 참 많이 좌우된다.
내가 의식하는 주변의 시선은 무엇인가? 주변의 시선에 상관없이 나를 지지하고 붙들어줄 고유한 정체성과 안정감에 대한 확신이 나에게는 있는가? 깊어가는 가을, 내 삶의 기초를 돌아보자.[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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