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중 칼럼]'공수처(公搜處) 신설이 절실한 이유
[김강중 칼럼]'공수처(公搜處) 신설이 절실한 이유
  • 김강중 선임기자
  • 승인 2017.09.26 16: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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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김영란법’ 시행 1년을 맞았다. 다소 불편했어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모두들 반기는 기색이다.
공무원은 물론, 언론과 사립교원 까지 포괄하는 ‘김영란법’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 것이다.
‘김영란법’ 여론조사에서 보듯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41.4%로 나타났다.
일부는 경기침체를 들어 ‘현행을 유지하되, 우리 농산물은 예외 적용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또 ‘식사 10만 원, 선물 10만 원, 경조사 5만 원으로 개정하자’고 응답했다.

정리하면 김영란법에 호응하면서도 농민과 자영업자를 위해 개선돼야한다는 의견이다.
어쨌든 꽃을 살 수 없는 아이는 선생님에게 꽃을 바치지 않게 돼서 좋았을 것이다. ‘학운위’나 자모회도 돈을 갹출하지 않아 자정의 효과도 컸다.
안 주고 안 받는 것이 편하고 좋은 것이란 것도 알게 됐다. 또 언론도 적용되다보니 ‘광고수주’에 내몰린 기자들은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반생을 기자로 보낸 필자도 지난 1년간 많은 변화를 실감했다.
김영란법 이전에도 출입처 간담회에 그리 달갑지 않았다. 출입처도 속절없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속셈이어서 기자도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밥 한 끼도 떠벌리는 그들의 속성에 구차했고 어설픈 이해관계도 꺼림칙했다.
어쨌든 광고 부탁, 골프 부킹, 콘도 예약 등 이런저런 청탁 등이 사라진 것은 반길 일이다.
청탁을 해서도 안 되고, 부탁한다 해도 거절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 것은 값진 수확이다.
하지만 점심은 그렇다 해도 저녁 술자리에서 법을 준수하기는 어려워 유명무실도 대두됐다. 일부 고위직 공직자 비리는 여전해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거래단가만 높였을 뿐 비위는 계속됐고 언론도 그 습(習)을 버리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한 단체장 실세는 수십억 원의 선거비용을 회수하고 외국으로 뜬다는 말을 공연히 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어느 공사 임원은 업체를 돌봐준 댓가로 3000만 원의 전별금을 받았다고 자랑이다. 어디 이뿐인가. 한 단체장은 사업자로부터 수억의 자금을 끌어 쓰고 약속한 사업이 진전이 없자 술자리서 눈물을 짓는다는 후문이다.
모 기관 발주처는 공사를 분리 발주하면서 설계 및 자재 선정의 의혹이 난무하고 하청 등 잇권을 요구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매관매직의 ‘사오서칠(事五書七)’도 여전하다. 대학 전임교수 채용 시 4~5억 원, 사립 중등교사는 1억~2억 원을 재단에 기부해야 한다.
어느 대장의 비리를 언급하지 않아도 군(軍) 장성 진급 비리도 공공연한 불문이다. 한줌 권력의 뒷전에서는 발주공사, 승진인사를 놓고 검은 돈이 오가고 있다.

오늘날 정치권은 어떠한가. ‘내로남불’식 원칙을 들먹이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는 사이 미국과 북한 간 일촉즉발의 전운이다. 한가한 정쟁은 임란(壬亂) 전과 구한말과 다름 아니다.
이처럼 염불보다 잿밥에 팔려있는 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도입이다.
‘공수처’는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20년간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공직부패수사처’로 명명돼 수차례 시도됐다. 고위직 비리가 터질 때마다 ‘공수처’ 법안이 발의됐으나 검찰의 반대로 무산됐다.
참여정부에서도 ‘공수처’를 설치하려다 검찰 반발로 수포로 돌아갔다. 그 결과 지난해 전·현직 검사장과 부장급 판·검사들이 대거 구속됐다. 그럼에도 자신들 목에 방울 달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국민들은 김영란법도 중요하나 시급한 게 ‘공수처’ 도입이라고 믿고 있다. ‘밥장사 보다 추악한 법장사’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명분을 얻은 문재인 정부는 회심(會心)의 ‘공수처’를 추진하고 있다,
국민 80%가 지지하는 만큼 성역을 없애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기회를 잡은 것이다.
지난 20여 년 13차례나 발의된 ‘공수처’ 법안이 무산돼서는 안 된다. 일각에서는 ‘옥상옥’ 기구가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득권의 욕심이고 공급자 중심의 탐욕이 아닐까. ‘구더기 무서워 장(醬) 담금 수 없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후대를 위해서라도 법(法)이 바로 선 나라, 기강을 쇄신해 ‘청렴한국’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눈빛과 낯빛, 그리고 고매한 품격이다.
조선 중기 3대 문장가인 신흠의 시(詩)다. 상촌(象村)은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옳은 소리를 하고 가난해도 뜻을 팔지 않아야 한다. 시세가 바뀌어도 중심을 잃지 않고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자본과 아첨의 시대에 쉽지 않은 덕목이다. 이전투구에 여념이 없는 죽은 권력이든, 살아있는 권력이든 새겨야 할 계훈(戒訓)이 아닐까.[충남일보 김강중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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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일 2017-10-16 17:27:41
깊어저 가는 가을! 자연은 변함없이 순리대로 흘러가는데 인간들 세상은 왜 이리도 욕심과 증오와 반목만이 판을 치는지~ 용서와 아랑이 필요한 세상이다, 남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게만 관대한 사회와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받게된다. 그것이 자연의 섬리이다. 자신에게 엄격한 마음을 가져으면 좋겠다 그래야 후손에게 부끄러운 세상을 물려줄 수 있다. 참 좋은글에 감사합니다.